공평과 정의로운 행동, 원숭이도? 인간만이?

이은희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공평과 정의로운 행동, 원숭이도? 인간만이?

미국의 영장류학자 사라 브로스넌은 오지라는 이름의 카푸친 원숭이의 행동 양식을 연구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포착한다. 땅콩을 매우 좋아했던 오지는 원하는 만큼의 땅콩을 얻지 못하자, 연구자에게 일종의 ‘딜’을 시도한다. 처음에 오지가 교환의 대가로 제시한 건 마른 사료 조각이었다. 하지만 연구자가 이에 응하지 않자 오지는 결국 오렌지를 가져와 땅콩과 교환하려 한다. 오지는 자신이 원하는 것(땅콩)보다 가치가 낮다고 생각되는 것(사료)으로 시도한 교환이 실패로 끝나자, 이보다 훨씬 더 가치가 높은 것(오렌지)을 제공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연구자는 흥미를 느낀다. 오지는 교환에 있어 공평함의 개념을 아는 듯했다. 오지의 이런 행동은 브로스넌 박사로 하여금 다른 카푸친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이제는 원초적인 공평함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오이와 포도’ 실험을 구상하게 한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연구진은 여러 마리의 원숭이들에게 돌멩이를 가져오도록 한 뒤, 이들이 가져온 돌멩이를 오이와 바꾸어 주는 시도를 한다. 먹을 수 없는 것(돌멩이)을 먹을 수 있는 것(오이)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 원숭이들은 성실히 반복되는 맞교환에 참여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연구자들이 아니다. 연구자들은 이번에는 돌멩이를 주워온 원숭이들 중 일부에게는 오이를, 일부에게는 포도를 주면서 차이를 두었다. 포도는 오이에 비해 더 달아서 원숭이들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먹거리였다. 다른 동료가 더 맛있는 포도를 받는 것을 보자 지금껏 군말없이 오이를 받아가던 원숭이들은 더 이상 교환에 참여하길 거부한다. 심지어 일부는 가져온 돌멩이를 연구자들에게 던지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혹시 이들은 단지 포도가 더 먹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이를 증명하고자 연구자들은 원숭이 우리 앞에 포도가 가득 든 그릇을 놓아두고, 돌멩이를 가져온 원숭이들에게 오이만을 주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처음처럼 다시 돌멩이와 오이의 교환에 별다른 저항없이 참여했다. 만약 원숭이들의 단지 포도가 더 좋아서 거부한 것이라면, 포도가 뻔히 보이는 마지막 실험에서는 모든 원숭이들이 포도를 달라며 오이를 내던져야 했다. 이를 통해 원숭이들이 거부한 건 오이 그 자체가 아니라, 동일 행동에 다른 보상을 주는 불공평함과 노동 없는 이익에 대한 불공정함임을 알게 되었다.

원숭이조차 공평함에 대한 감각이 있다면 인간은 어떨까? 2015년 미국의 심리학자 캐서린 맥오리프는 서로 다른 7개의 문화권에서 온 4~15세의 아이들 866쌍을 대상으로 공정성에 대한 실험을 한 바 있다. 두 아이에게 연구자들은 무작위로 공평한 결과(각각 사탕을 한 개씩 주는 것)와 불공평한 결과(한쪽에는 사탕 1개, 다른 쪽은 4개)를 주고, 이 중 한 아이에게만 ‘의사결정자(decision-maker)’의 역할을 부여한다. 의사결정자가 된 아이는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아이들 앞에는 녹색 레버(수용)와 빨간 레버(거부)가 있는데, 녹색을 누르면 두 아이들은 모두 사탕을 가질 수 있지만, 빨강을 누르면 아무도 사탕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레버를 누를 권리는 오로지 의사결정자에게만 있다. 의사결정자가 된 아이들은 공평한 결과에는 망설임 없이 녹색을 눌렀고,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상대는 4개, 자신은 1개인 경우)에는 여지없이 거부의 빨간 레버를 눌렀다. 여기까지는 원숭이 실험과 비슷하다. 공평함은 수용하나 불공평함은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공평함이 오히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는 어떨까. 의사결정자에게만 사탕이 4개 주어지는 경우 말이다. 이 경우에도 아이는 불평등함을 인지하고 올바르게 행동할까. 흥미롭게도 일부의 아이들은 이 경우에도 빨강 레버를 선택하는 정의감을 표현했다. 다만 자신에게 유리한 불공평함을 거부하는 행동은, 내게 불리한 불공평함을 거부하는 행동에 비해서는 더 늦은 나이에 나타났으며, 아이들이 속한 문화권에 따라 발현율이 다르게 나타났다. 이는 불평등함을 인지하는 행동은 매우 원초적인 감각이나, 공정성에 대한 감각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까지 확장해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은 문화적 배경과 정신적 성숙에 의해 영향받을 수 있는 ‘다듬어진’ 행동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내가 받은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건 원숭이조차 할 수 있는 일이니. 하지만 불평등함의 결과가 내게 유리하게 나타날 경우 그걸 거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다른 원숭이가 오이를 받았을 때, 포도를 받은 원숭이들은 결코 달콤한 보상을 거부하지 않았다. 인간이 그저 털만 없는 원숭이가 아니라 그보다 더 나은 존재라 여기는가? 그렇다면 공정함에 대한 감각을 나를 넘어 타인에게까지 아우르는 것이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