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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도 안다
‘머리가 나쁘다’라고 누군가를 낮잡아 볼 때, 흔히 소환되는 동물 중 하나가 금붕어다. 금붕어의 기억력이 겨우 3초에 불과하다는 낭설은 너무나도 널리 퍼져 있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봐도 물고기의 지능은 물리적으로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대개의 물고기들은 뇌가 아주 작고 신경세포의 숫자도 1000만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적다. 이는 어림잡아도 인간 뇌의 1000분의 1에 불과하며, 이렇게 작은 뇌는 신체활동을 유지하고 움직임을 제어하며 본능적 반응을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정도다. 하지만 과연 정말 물고기는 속설대로 멍청한 걸까. 이에 반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바로 영국 UCL 신경과학연구소의 연구진이 실시한 ‘물고기의 수학적 능력’에 대한 연구다. 이들의 실험 대상은 관상어로 인기 있는 작고 흔한 물고기인 거피였다. 거피를 비롯한 작은 물고기들은 본능적으로 무리를 이루려는 습성이 있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하단에 위치한 이들일수록 무리를 이루려는 ... -
나무늘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물들이 많다지만, 그 ‘희한한 동물들’의 목록 상단에 위치할 만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나무늘보다. 남아메리카의 울창한 정글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던 나무늘보를 처음 문명 세계에 알린 것은 16세기 스페인의 한 탐험가였다. 그는 나무늘보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동물”이라고 혹평했고, 이 부정적인 첫인상은 이후 나무늘보의 이미지를 ‘너무나 게을러 형편없는 짐승’으로 고착시킨다. 나무늘보에 대한 경멸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그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는데, 나무늘보의 영어 명칭인 ‘sloth’는 7대 죄악 중 하나인 ‘나태(sloth)’에서 그대로 붙여진 것이기 때문이다.나무늘보에게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근원에는 애초에 편향된 시선이 있었다. 나무늘보의 원래 서식지는 남아메리카의 빽빽한 열대우림이지만, 이들을 처음 대면한 사람들은 그들을 원래 살던 나무 위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땅바닥에 내려놓고 살폈다. 땅 위에 내려진 나무늘보... -
머무르거나 떠도는 것이 운명을 결정한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종류는 약 200종이나 되지만, 이들을 정착의 여부로만 보면 부착성 세포(adherent cell)와 부유성 세포(suspension cell), 단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부착성 세포는 말 그대로 특정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 서로 결합해 못 박힌 듯 자리를 고수하는 세포들이다. 사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 대부분은 부착성을 가진다. 그렇지 않으면 몸을 제대로 유지하거나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단단히 결합하지 않으면 혈관에 구멍이 나기 십상일 테고, 복강 내 내장기관이나 근육층 내부에서 머리카락이나 치아가 자라나는 상황은 상상조차 끔찍하다. 이처럼 자리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에, 부착성 세포들은 제자리에서 떨어지면 사멸하기 마련이다. 부착성 세포에게 정착은 그 자신과 몸 전체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고수해야만 하는 운명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세포들이 그렇게 머물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세포들 중... -
요리하는 영장류
코로나19 감염 후, 답답한 자가격리를 끝내고 외출이 가능해졌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건 공원이었다. 아직 초봄이라 공기는 차가웠지만, 바깥 바람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짧은 산책의 마무리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제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 모금 머금은 따뜻한 액체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색과 제형은 커피가 분명한데, 혀는 커피를 인식하지 못했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인 미각 상실의 결과였다.혀에 존재하는 미각 수용체는 평소에도 2~8주를 주기로 교체되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투로 사라진 미각은 두어 달 후에는 다시 이전과 비슷해졌다. 하지만 그 두 달 동안 맛에 대해 매우 새로운 경험을 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미각의 회복 속도가 맛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회복된 미각은 신맛이었고, 그다음이 짠맛이었으며, 가장 늦게 돌아온 건 단맛이었고, 쓴맛은 들쭉날쭉했다. 약을 혀에서 녹여도 쓴맛이 안 느껴지는데, 상추는 써서... -
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다
퀴즈 하나, 인간의 몸에서 빨간색이고 통통하며 만지면 뜨겁고 아픈 데다 마음먹은 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염증(炎症, inflammation)이다. 충혈, 부종, 열감, 통증, 기능 저하는 염증의 5대 특성이다. 염증은 괴롭다. 라틴어 ‘flamma’는 불꽃이라는 뜻이며, 한자 염(炎) 역시도 불타다는 뜻이니, 염증은 이름 그 자체부터 뜨겁고 괴로운 것임을 내포하는 셈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의 상당수는 염증을 달고 산다. 스트레스성 위염이나 알레르기성 비염, 역류성 식도염, 방광염, 인후염, 중이염, 관절염, 치주염 등등에 시달려본 적이 없는 이들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시장도 엄청나다. 2022년 기준 글로벌 항염증제 시장은 1091억달러(약 145조원)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매년 6.58%씩 커질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만큼 각종 염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염증(炎症)이라면 염증(厭症)을 ... -
결정적 순간은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에는 결정적 순간이란 것이 있다. 이전까지는 없던 새로운 개념이나 관점을 누군가가 최초로 깨닫고 그 이후로는 역사의 행보가 달라지는 순간 말이다. 1928년의 어느 날 역시도 그 결정적 순간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바로 알렉산더 플레밍이 실험용으로 키우던 세균 배양접시에 페니실린을 품은 푸른곰팡이가 날아든 순간 말이다.흔히 페니실린은 ‘최초의 항생제’라 불린다. 항생제(antibiotics)란 “미생물이 다른 미생물의 성장과 증식을 억제하거나 사멸시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을 의미한다. 미생물들이 경쟁자를 물리치고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화학무기가 바로 항생제인 셈이다. 미생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저마다 다양한 종류의 항생제를 만들어 서로를 견제해왔다. 하지만 인간이 이를 눈치채고 이용하기 시작한 건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만드는 곰팡이를 찾아낸 바로 그 순간이라 여긴다. 그러나 인류가 ‘세균 잡는 곰팡이’의 가능성을 눈치챈 건 이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플레밍의... -
한 마리 펭귄을 키우는 데 필요한 책임과 믿음
사시사철 추운 남극에서도 가장 추운 겨울인 5월에서 8월까지는 황제펭귄의 번식기다. 황제펭귄은 암컷이 낳은 알을 수컷이 품어 부화한다.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와 시속 100㎞에 달하는 칼바람 속에서 두 달여를 꼼짝하지 않고 발 위에 놓인 알을 소중히 품은 채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는 황제펭귄의 모습은 ‘부성애’의 대표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심지어 수컷 펭귄은 오랜 굶주림 속에서도 끝까지 소화흡수되지 않고 배 속에 남겨둔 물질들로, 젖과 비슷한 유동식인 펭귄 밀크(Penguin milk)를 만들어 새끼에게 먹이기도 한다. 이러한 아빠 펭귄의 숭고한 부성애는 감동적이지만, 어린 펭귄이 무사히 살아남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부성애 외에도 다른 것이 필요하다. 한 마리의 새끼 펭귄을 건강하게 키워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 펭귄 모두의 책임감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새끼가 부화되고 며칠이 지나면 알을 낳고 떠났던 암컷이 돌아온다. 충분히 먹이를 먹고 통통하게 살이... -
너그러움·친밀함, 유전자에 남은 생존의 지혜
1938년, 500마리의 붉은털원숭이를 실은 배가 인도를 출발해 대서양 건너 푸에르토리코의 카요 산티아고라는 작은 섬으로 향하는 긴 여정에 올랐다. 이들은 영장류의 사회생활과 성적 행동 연구를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주요 관찰 대상자로 선정되어 강제이주 중인 상태였다. 편한 여행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수의 원숭이들이 선상에서 목숨을 잃을 정도로 가혹한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일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작은 섬 카요 산티아고는 곧 ‘원숭이섬(Monkey Island)’이 되었고, 이곳은 영장류 학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인위적이지만 더없이 이상적인 연구실로 자리 잡았다. 위기가 닥친 것은 2017년이었다. ‘마리아’라는 이름의 거대한 허리케인이 이 지역을 강타했던 것이다. 자애로운 성모에게서 유래된 이름답지 않게 마리아는 흉폭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만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국민의 절반이 이재민이 되었으며, 피해액의 규모는 900억달... -
민감성과 소통, 효율성의 바탕
예로부터 비둘기는 아무리 먼 곳에 데려다 두어도 집을 기억하고 기어코 집을 찾아 돌아온다고 여겨졌다. 이런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별다른 통신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 원거리 비행 우편배달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전서구(carrier pigeon)를 이용해 소식을 전하는 관습은 고대 로마 시절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수천년간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던 주요한 통신체계였다. 하지만 이런 비둘기들의 놀라운 집찾기 능력도 철새들의 길찾기 능력에 견주면 보잘것없어 보일 정도다.제비는 봄이 되면 찾아와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운 뒤 가을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남쪽으로 떠나는 한반도의 대표적 여름 철새다. 제비가 이동하는 거리는 무려 1만2000㎞에 달하는데, 제비 몸에 GPS를 붙여 측정한 결과 제비는 제주도-필리핀을 거쳐 호주까지 내려갔다가 이듬해 봄이 오기 전 자신이 남하했던 경로를 그대로 따라서 다시 북상한단 것이 밝혀졌다. 일부는 자신이 작년에 알을 ... -
리더의 효율성, 다수의 안정성
동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먹고 사는 일’이다. 그런 점으로만 본다면 일명 ‘리카온(lycaon)’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들개는 매우 우수한 동물이다. 육식동물인 리카온의 사냥 성공률은 최대 90%에 달하는데, 육식동물 대부분의 사냥 성공률이 50%를 밑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성공이다. 이들의 높은 사냥 성공률의 비결은 개별적 개체가 아니라 다수가 협력하는 집단의 힘에서 비롯된다. 리카온은 그늘에 숨어 있다가 잽싸게 먹잇감의 숨통을 물어뜯는 습격자가 아니라, 한 번 찍은 사냥감을 죽을 때까지 쫓는 집요한 추적자 스타일의 사냥꾼이다. 달리기라면 일가견이 있는 초식동물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협동의 미덕이 빛을 발한다. 리카온은 갯과 동물답게 수십마리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데, 이들의 집단은 모든 것이 하나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운명공동체’이다. 같은 집단의 리카온들은 몇개의 소규모 팀을 구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