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언어가 사라진 극단의 시대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나라 밖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중국과 대만, 중국과 미국의 갈등도 여전하다. 비핵화, 종전선언, 전시작전권 환수처럼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는 남북관계, 북·미관계도 이후를 낙관하기 어렵다. 기후위기 대응을 비롯해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질 것이기에 외교를 담당하는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주일 뒤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는 적합한 인물일까?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이런 위태로운 국제정세를 잘 헤쳐가려면 관련 정보도 잘 수집하고 인맥도 탄탄하고 관료들도 잘 통제할 사람이 필요하다. 대통령 한 명이 이런 역할을 전담할 수 없으니 따끔하고 현명한 조언을 해줄 참모진도 필요하고, 그런 사람을 찾고 쓸 안목도 중요하다. 정권교체니, 정치교체니 하는 양당제에서 만들어진 허구보다는 제 몫을 해줄 정치인이 필요하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정치인이 잘 보이지 않는 오랜 답답함에 시달리고 있다.

답답함을 더하는 건 내부의 상황이다. 선거 때 비방이 난무하고 상대 후보에 대한 지지를 사표라 비난하는 건 늘 있던 일이다. 답답한 건 후보자나 그 소속 정당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그 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지지를 보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금은 정치에 관한 정보가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뒤틀려 버렸다. 자기 편에 유리한 정보가 아니면 모두 가짜정보로 취급한다. 어느 편에 속해야만 말이 지지를 받고 나를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정치의 열정을 극단의 언어로 표출하게 만든다.

다양한 언어 대신 극단 메시지 난무

그런데 ‘가짜·진짜’의 틀로 정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은 어떤 정보가 제공되어도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말은 주고받되 어떠한 합의도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 합의는커녕 서로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의 언어가 대안을 찾아갈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더구나 대립의 전선은 종교나 이념만이 아니라 성별, 세대로 넓어졌고 정치인들은 오늘만 사는 듯 이 전선을 지휘하려 든다.

그러면서 정치의 위기는 시민사회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의 대표급들이 정치인으로 편입되는 것 역시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 범위가 훨씬 더 넓어졌다. 마을공동체와 사회적 경제, 사회혁신 같은 영역이 자기 힘을 바탕으로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특정 정치인들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그것에 포획되어 버렸다. 상상된 운명공동체의 논리가 강요되고 이제 시민사회의 언어도 극단의 언어를 닮아가고 있다. 선거 이후에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맞이하게 될까? 이제는 누가 극단적인 대립의 완충장치 역할을 맡을까?

시민사회운동의 정치 중립성 같은 이야기를 꺼내려는 게 아니다. 운동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운동과 정치가 연결되려면 개인의 결단이나 헌신이 아니라 조직의 결정과 책임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을 보기가 어렵다. 이해관계와 가치가 뒤섞이면 신뢰가 무너지고, 신뢰가 사라지면 극단의 언어가 더 강해진다. 정치는 역할이라는 가면을 쓰고 상대를 설득하고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데 서로의 민낯만 드러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자신이 선택받아야 강한 나라,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심각한 불평등과 사회 모순을 직시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현실을 외면한 환상은 결국 위기를 가중시키고, 내부의 위기는 외부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전쟁과 풍요, 위기로 이어진 자본주의 모순과 불안정이 인구폭발과 생태계 파괴라는 역사적인 위기의 시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이 시점에서는 과거의 지도를 꺼내보는 것이 의미가 없고 지금 여기서 세계를 이해하고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 중립화나 정의로운 전환, 차별 금지 등 다양한 정치언어가 필요한데, 한국의 정치인들은 강함 아니면 몰락, 대박 아니면 쪽박식의 메시지만 전달하고 있다.

안정과 화해의 정치 등장 기다려

정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을 안정시키고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화해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1919년 3·1운동은 전 민중이 일제에 저항했던 사건이고 일본의 통치술을 바꿨으며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왕조를 지지한 사람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해방된 새로운 사회를 꿈꿨고, 그런 사람들 덕에 사회는 조금 더 달라졌다. 그런 정치의 등장을 절실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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