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란 다름을 인정해 가는 험난한 과정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한 지인이 말했다.

박종성 논설위원

박종성 논설위원

“이제 적과 아군을 확실히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과의 친분을 재산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생각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팔로하는 사람을 잘랐습니다.” 지난 주말 고등학교 동창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한 동창생이 대통령 선거에 나온 한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전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 자제할 것을 권한 바 있으나 재발했다. 이를 보고 다른 친구가 커뮤니티를 떠났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온라인 언론 사이트가 정치논쟁의 싸움터로 바뀌었다. 분노, 혐오, 질시, 증오가 쏟아진다. 곧바로 주먹다짐으로 이어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정치 문제로 술자리에서 드잡이를 하던 시절은 차라리 낭만적이다. 온라인 뉴스 대화창은 24시간 선수들이 링에 올라 치고받는 아레나가 됐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생기면서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고 원활한 소통으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됐다. 물론 바람직한 방향으로 활성화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혐오를 부추기는 표현과 비방이 난무하면서 난장판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짜뉴스와 부풀리기가 판을 치고 내 편과 네 편을 나누어 끼리끼리 뭉치고 상대방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교육 수준이 낮아서인가.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의 비율이 50%를 넘는다. 주요국 가운데 캐나다·일본에 이어 세계 5위다. 안타깝지만 많이 배운다고 배려와 아량, 공감능력이 향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배울수록 자만과 아집에 빠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민주화 수준이 낮기 때문인가.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민주화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01개국 중 16위다. 일본(17위)보다 높다. 후발국 가운데 우리나라 정도로 위상이 높아진 나라는 찾기 힘들다.

물론 미디어 플랫폼의 책임도 부인할 수 없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는 구독자들을 오래 플랫폼에 머물게 할수록 돈이 벌린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구독자가 원하는 정보만을 뽑아서 제공한다. 구독자는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보게 된다. 정보의 편식은 사고의 편향을 불러온다. 균형감각은 사라지고 확증편향은 고착화된다. 그러나 알고리즘의 책임은 부차적이다.

문제는 아직도 한국 사회가 공동체 내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되지 못한 데 있다.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면 적이고, 같으면 동지로 나눈다. 끼리끼리 집단화하는 ‘부족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나의 동료’와 ‘동료 아닌 사람’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누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의 ‘폭력 본능’을 말한다. 뇌에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화학물질이 분비되면 누군가를 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그런데 이런 ‘폭력의 회로’는 자신이 속한 집단보다 다른 집단에 더 쉽게 작동한다고 한다. 또한 집단이 되는 순간 행동은 비이성적으로 변한다.

1954년 미국의 무자퍼 셰리프라는 심리학자가 남자아이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로버스 동굴 공원 실험’이다. 두 그룹에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뒤 이들이 서로 만나 경기를 하도록 했다. 그 결과 그룹 내의 동료의식은 높아졌지만 상대 그룹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다. 험담은 물론 공격적인 행동도 잇따랐다.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식사를 하거나 영화감상을 했지만 쉽게 개선되지 못했다. 일단 형성된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데는 적극적인 노력이 수반돼야 했다. 2014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행동 패턴을 실험했다. 집단이 되어 행동하면 개개인의 도덕심이 마비되고 윤리관이 무너지는 것으로 나왔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가장 혼탁한 선거라고 한다. 정책 대결은 사라졌고 상대방을 향한 비방과 거짓선전, 사생활 파헤치기가 대부분이었다. 지지자들도 피 터지게 싸웠다. 편가르기는 심해졌고 적대감은 커졌다.

성숙한 시민사회는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고 그것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본능에 저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선거 이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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