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과 검찰의 업보

조홍민 사회에디터

점입가경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힘겨루기가 가파르게 이어진다. 배수진에 더해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결기마저 읽힌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둘러싼 정치권과 검찰의 충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다음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전에 입법을 마무리하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검찰의 사활을 건 싸움이 진행 중이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조홍민 사회에디터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검수완박’, 즉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의 요체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와 수사지휘, 기소까지 깡그리 챙겨가면서 권력 독점이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앞으로 공소 제기와 유지 정도만 하게 된다. 입법이 구체화되자 검찰의 거센 집단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검사의 손발을 묶는 것’ ‘피해자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범죄방치법’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범죄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며 전방위 여론전을 펴고 있다. 수사권을 분리하면 부실 수사가 이어지고 부패와 범죄가 판을 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수완박이 초래할 부작용과 후유증을 우려한다.

민주당 역시 퇴로를 차단한 채 끝까지 갈 분위기다. 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법사위 의결을 강행 처리하기 위해 당 소속 의원을 ‘위장탈당’시키는 꼼수까지 동원했다. 검수완박의 마무리를 향해 앞뒤 안 가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모’ 아니면 ‘도’다.

사실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민주당이다. 불과 1년 전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 수사권은 검찰에 남겨두기로 했는데 이마저 빼앗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5년간 뭘 하다가 현 정권 임기 말에 부랴부랴 입법을 추진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수사권을 넘겨받을 경찰에 대한 통제는 어떻게 할지,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를 위해 어떤 장치를 마련할지 제대로 논의도 안 됐다. 민주적 절차도 무시됐다. 통과시키기엔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도 힘으로 밀어붙일 작정이다. 명분은 ‘검찰개혁 완수’라지만 속내는 자신들이 정치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하는 것 같다.

적잖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국민 상당수가 ‘검수완박’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강력한 수사권을 무기로 최고 권력처럼 행세했던 검찰의 행태 때문이다. 일부 정치검찰을 중심으로 이뤄진, 그 누구로부터도 통제받지 않은 검찰권력의 독주는 여러 폐해를 낳았다. 타깃을 정하고 ‘한 놈만 패는’ 표적 수사를 하거나 누룽지 긁듯 박박 긁어 별별 혐의를 갖다붙여 별건으로 영장을 청구하기도 한다. 반면 자기편의 혐의에 대해선 아예 눈감거나 축소 수사하는 관대함을 시전한다. ‘선택적 정의’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자녀의 의과대학 편입학 특혜 의혹, 아들 병역 비리 의혹 등이 불거진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윤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장모 관련 사건도 마찬가지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경우 청문회가 열리기 전부터 의혹만 가지고도 압수수색을 해댔다. 딸의 인턴·체험활동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고교 일기장을 뒤지고, 현금카드·신용카드도 탈탈 털었다. 결국 부인은 구속됐고 딸은 대학과 의전원 입학이 취소됐다. 윤 당선인이 강조한 공정과 상식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다음달 검찰 출신 대통령의 정권이 출범한다. 윤 당선인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최측근인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지명했다. 한동훈 후보자는 검찰 내 최고의 특수통으로 꼽히는 검사다. 윤 당선인 쪽에서는 “아끼는 후배에게 칼 대신 펜을 쥐여준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집권 후 현 여권에 대한 정치 수사와 기소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런데도 검찰 내에서는 ‘검수완박’의 부당성 설파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전혀 없다. BBK 주가조작 사건이나 유우성씨 보복기소 때도 그랬다. 검찰 내부에서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와도 금세 조직의 논리에 묻힌다. 검수완박은 기나긴 세월 쌓여온 검찰 적폐의 업보나 다름없다. ‘선택적 정의’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적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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