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과실, 대기업·부자에게만 돌아가선 안 된다

안호기 논설위원

골프장은 요즘 최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해외에 나가지 못하는 골퍼들이 국내 골프장으로 몰려들어 주말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골프장 평균 영업이익률은 30%대에 이른다. 최근 매물로 나온 몇몇 골프장 호가는 홀당 1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 2배가량 폭등했다.

안호기 논설위원

안호기 논설위원

골프장 운영사와 골프카트 운영 위탁사 등이 세금 환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가 최근 패소했다. 부가가치세를 면제받는 대중교통과 마찬가지로 골프카트도 ‘여객을 운송하는 수단’이니 부가세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대중교통 기능이 없는 골프카트는 여객운송 용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골프장 이익이 크게 늘었어도 세금은 아까운 모양이었다. 골프카트가 여객운송 수단이라고 우긴다면 말이나 요트도 그렇게 보지 않을까 쓴웃음이 나온다.

골프업자들이 오는 10일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서 ‘골프카트 부가세 부과는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대대적인 규제완화 바람이 불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3일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민간의 혁신역량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전면적인 규제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차기 정부 핵심 관료들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목소리로 규제완화를 외쳤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기업활동에 큰 부담을 주는 덩어리 규제는 과감히 걷어내겠다”고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역시 부동산과 세금, 대출 등에 관한 규제를 풀겠다고 강조했다.

차기 정부는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와 민·관·연 합동 규제혁신추진단을 통해 현장·수요자 중심 규제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 박근혜 정부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연상케 한다. 보수 정권은 규제완화를 ‘성장의 마법 지팡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친시장 경제정책은 대기업과 부자에게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인수위와 경제팀 내각 후보자들이 제시한 대표적인 규제완화는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 친족 범위 축소, 기업결합 신청 시 독과점 해소 방안 스스로 마련, 플랫폼기업 거래질서 자율규제 우선, 법인세 구간 조정, 근로시간 노사 자율선택 확대,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대주주 양도소득세 단계적 폐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임대차 3법 폐지에 가깝게 개편 등이다.

대기업과 자산가는 세금 부담이 낮아지고, 친족 범위에서 벗어난 총수 일가는 공시의무가 없어진다. 기업 인수·합병 시 독과점 우려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강제적 독과점 해소명령도 사라진다. 대형 온라인 플랫폼은 소상공인을 배려하라는 정부의 시시콜콜한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시간이 길어져 공장 가동도 그만큼 늘어난다. 낙수효과는 없다는 게 오래전 입증됐음에도 차기 정부는 대기업이 잘돼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여기는 듯하다.

규제완화에 따른 다른 영향을 보면, 세수가 줄어 점차 증가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노동자, 서민 등은 보호망이 한결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규제완화는 양극화와 사회갈등을 심화시키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물론 차기 정부가 구상하는 규제완화는 대기업과 부자만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규제를 푸는 목적은 다른 정부와 마찬가지로 경제 살리기에 있다. 그러나 차기 정부가 예고한 전방위적인 규제완화가 헌법이 규정한 경제민주화에 부합할 것인지에는 의문이 든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차기 정부가 살려야 할 것은 대기업과 부자의 경제가 아니다. 다수인 서민과 노동자 등 경제약자의 삶을 돌봐야 할 책임이 크다. 시민 행복이 성장보다 훨씬 중요하다. 여성가족부 해체와 병사 월급 200만원 지급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유예 또는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무작정 규제완화를 밀어붙이기보다는 부작용 등을 면밀히 검토해 시행착오를 겪기 전에 바로잡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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