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자랑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박선화 한신대 교수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세상에는 말이야.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나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박선화 한신대 교수

박선화 한신대 교수

가수 장기하의 신곡 ‘부럽지가 않어’의 가사다. 재기발랄한 가사에 똘끼 넘치는 영상까지 절로 웃음이 나는 중에, 부러운 게 없다는 말이 진심일지 치기어린 반어법일지 궁금해진다. 철학자들조차 인간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라고 규정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나 역시 언젠가부터 비슷한 생각을 한다. 정말 웬만한 것은 부럽지가 않아졌다. 노래 가사처럼 자랑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어서다.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또 자랑을 하고.” 맞는 말이다. 자랑은 대개 심리적인 허기의 표현이지만, 자랑질을 당한 자는 그게 억울하고 부러워 맞자랑을 한다. 그렇게 자랑과 부러움의 늪으로 모두가 빠져드는 세상을 관조하게 되면, “난 너의 자랑질을 결핍으로 이해할 테니 얼마든지들 해”라고 웃어넘길 수 있다.

부러운 게 적어진 더 중요한 이유는, 모든 성공과 성취, 소유와 누림엔 타인의 희생과 상처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인생법칙을 알게 되어서다.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거대한 부나 명예를 일구는 초인은 존재할 수 없다. 그 과정에는 본인 이상의 육체적·정신적 고통, 유·무형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더 나은 보답을 얻지 못한 이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들은 부모나 자식일 수도 있고, 자신보다 관심과 지원을 못 받은 형제자매일 수도 있으며, 동료나 직원, 제자, 힘없는 하청 업체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거나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200 전후의 세계 최고 지능으로 SAT시험을 졸면서도 만점을 받았다는 미국의 크리스 랭건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몇 번이나 대학 문을 두드리다 결국 포기하고 변방의 학자 겸 노동자로 남은 인물이다. 생계와 재능을 맞바꾼 영재들은 차고도 넘친다. 타인의 기회를 직접적으로 빼앗진 않더라도, 성공한 자의 그림자에는 포기한 자의 눈물이 숨어 있다. 삶은 부지불식간에 무수한 타자에게 상처를 주는 여정이다. 아름답고 풍성한 미식 사진 속에는 참혹한 살생이 숨어 있고, 향긋한 꽃놀이와 산책길 속에도 작고 여린 풀과 벌레의 짓밟힘이 있다. SNS를 가득 채운 고급스러운 취향과 성공담, 인싸들의 친분자랑, 특별한 스토리 속엔 축하와 덕담만큼 누군가의 박탈감이 존재한다. 자제하고 살펴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법정 스님이 한사코 속세를 멀리한 이유를 나이 들어 알게 된다. 소유와 누림의 크기만큼 타자의 희생과 상처가 필연으로 동반되는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소유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는 물질만이 아니었다.

새 정부 인선에 관한 뉴스들을 매일 접한다. 평범한 시민 눈에는 최악의 혼탁한 인물들이 자신의 삶은 떳떳하다며, 공정한 세계를 공언한다. 결핍과 욕망의 화신들끼리 탐욕의 성과를 자랑하고 부러워하는 삶을 살다보면, 늘 나 정도면 훌륭하다고 진심으로 믿게 되는 듯하다. 자신들과 일가족이 누리는 금준미주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새겨져 있을지 한 번도 돌아본 적이 없는 이들일 것이다.

부조리함이 넘치는 세계에서 진정한 불의에는 입을 닫고 안전하고 빛나는 길만 걸으며 권력에 영합해야 거머쥘 수 있는 타협과 보신의 트로피, 성공과 소유의 민낯을 알게 된 언젠가부터 부러움을 다스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가 않다.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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