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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마구 흔들리던 눈빛
    마구 흔들리던 눈빛

    어떤 작품은 감상하는 이들에게 저마다 다른 얼굴을 내보이기도 한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또한 그러하다. 늑대인간과 인간 여성 사이의 애틋한 로맨스이면서 동시에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아기자기하고 보편적인 육아기이며,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아이의 성장담으로도, 타자와 더불어 사는 데 대한 정치적 메시지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한편 내겐 신의 아이를 낳아 기른 어머니, 더 넓게는 종파를 넘어서 성직자나 수도자의 혈연에 관한 일종의 우화로 읽혔다. 연인이 늑대인간임을 받아들인 채 그와 사랑을 나누었고, 따라서 늑대아이인 자식 역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리라 이해하려 하면서도 오롯이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마음. 아이가 언제든 내적 부름에 따라 떠날 수 있음을 알지만 붙들어두고 싶은 염원. 애초 창작자가 의도했던 알레고리는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관객 한 명에겐 그런 이야기로도 가닿을 수 있었다.후반부에 이르러서였다. 아들 아메는 야생늑대의 ...

    2026.05.12 20:07

  • [공감]애물단지에서 보물단지로…노년의 재발견
    애물단지에서 보물단지로…노년의 재발견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여행이었던 한 지인은 오랜 고민 끝에 캠핑카를 한 대 샀다. 평생 직장에 매여 살았으니 이제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마음껏 길 위를 달리며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캠핑카 안은 작지만 완벽했다. 아늑한 침대와 주방, 냉장고,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었다. 실제로 처음 몇번은 아내와 바다를 보고 산을 오르고 창밖 풍경이 바뀌는 시간을 보내며 꿈을 실현하는 듯했다.하지만 몇달이 지나자 막상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일정은 여전히 존재했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으며, 함께할 사람의 시간도 맞추기 어려웠다. 그렇게 캠핑카는 점점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제는 전용 주차장 한편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존재가 되었다. 결국 한때의 설렘은 애물단지로 변해버렸다.우리 주변에는 이 주차된 캠핑카와 닮은 노년의 모습이 많다. 흔히 나이가 들어 현역에서 물러나면 그저 여유롭고 자유로운 인생의 황금기가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의 노년은 때로 그 기대와...

    2026.05.05 20:07

  • [공감]후회 길들이기
    후회 길들이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불킥을 했다. 전날 밤 술자리에서 괜히 남의 인생에 훈수를 둔 탓이다. 동이 트며 강해지는 아침 햇살은 눈을 찌르듯 마음을 후벼파더니, 잊고 있던 오래전 말실수까지 소환됐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더라면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했을 텐데… 샤워하는 내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돌아보면 인생은 후회의 연속인 것 같다. 후회는 내가 저지른 일을 최상의 선택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만약 다른 걸 했다면”이란 가정을 반복해보면서 더 나은 결과를 상상하게 만든다.그런 맥락에서 후회는 본질적으로 과거를 지향한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현재를 설명하고, 지금의 감정을 스스로 합리화한다. 불쾌할수록 더 멀리 되돌아본다. 어제의 말 한마디로는 지금을 설명하기 어렵다면 자연히 그 전으로 거슬러가면서 누적된 선택의 오류와 조절하지 못한 욕망의 연대기들을 들춘다. 열고 싶지 않았던 사건들의 상자를 열어 오늘의 감정을 설명해야, 비로소 지금의 내 못남이...

    2026.04.28 20:39

  • [공감]이젠 하고 싶은 일을 즐기기로 했다
    이젠 하고 싶은 일을 즐기기로 했다

    좀 냉정하게 말해 여러모로 주위에 민폐를 끼치지만 귀여움으로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돌쟁이 아이를 떠올려보자. 그 아이가 돌잔치에서 연필 하나만 들어도 다들 물개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칭찬한다. 자본주의의 냉정한 기준으로 보면 경제 성장에 단 1원도 기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연필을 쥔 아이의 미래를 꿈꾸느라 그렇다. 세 살짜리 아이가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무슨 멜로디 비슷한 소리를 내기만 해도 부모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질 것이다. 네 살짜리 아이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유명한 K팝 가수의 춤을 흉내 내도 마찬가지다. 나는 마흔여섯 살이다. 그동안 살면서 여러 능력을 발전시킨 덕에 돌쟁이 아이보다 연필을 훨씬 잘 쥐고, 세 살짜리 아이보다 피아노도 잘 친다. 그러나 그런 나조차도 나에게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환호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여섯 살 피아노 신동이 되지 못할 것이고, 사람들이 클릭할 만한 어린 신동 쇼츠의 주인공이 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2026.04.21 20:01

  • [공감]보이고 싶은 나
    보이고 싶은 나

    언젠가부터 뺨에 옅은 얼룩이 조그맣게 보이더니 점차 개수가 늘어나고 짙어졌다. 마을로 내려간 김에 피부과를 찾았다. 편평사마귀라 불리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라고, 레이저를 쏘면 지워진다고 했다. 쏜다고 하여 겁을 내자, 이 정도는 레이저 축에도 안 들 가벼운 시술이며 약간 홍조를 띨 수 있을 뿐 일상엔 지장이 없을 거라 설명해주셨다. 겉보기에 별로 티가 나지 않더라도 전염성이라 내버려두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옮길 수 있댔다. 맥락상 그 사랑이 사랑하는 ‘마음’은 아닐 터였고 재즈곡 노랫말처럼 누군가와 뺨에 뺨을 맞대어 춤출 상황이야 없겠으나, 신경은 쓰였다. 내친김에 바로 치료받기로 했다. 마취연고 처치 후 양 볼에 레이저를 팡 쏘았다. 들은 대로 시술은 간단했다.이튿날 아침, 세수하려다 거울을 보고 흠칫 놀랐다. 양 볼이 벌에 쏘인 것처럼 되어 있었다. 병원으로 전화해 증상을 설명하자 하루이틀 두고 보라 하셨지만, 사흘 나흘 지나도 빨갛게 부푼 피부는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닷새...

    2026.04.14 19:58

  • [공감]늦게 피는 꽃
    늦게 피는 꽃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봄바람이 불며 여기저기 벚꽃이 만개했다.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 사이를 걷다 보면 그 눈부신 생동감에 마음까지 환해지며 어느새 봄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활짝 피어난 꽃들 사이에서 이제야 수줍게 꽃망울을 맺은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김마리아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봄이 왔다고 다 서둘러 꽃이 피나요? 늦게 피는 꽃도 있잖아요.” 어떤 꽃은 일찍 피어나 우리를 설레게 하고, 또 어떤 꽃은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때를 기다린다.이러한 모습은 예술가들의 삶에서도 발견된다. 미국의 국민 화가 그랜마 모지스는 78세에 처음 붓을 들었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00세에도 그림을 25점이나 그렸다. ‘한국의 그랜마 모지스’라 불리는 김두엽 화가 역시 83세에 그림을 시작해 97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7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보여...

    2026.04.07 19:53

  • [공감]재능인가 노력인가
    재능인가 노력인가

    레전드 운동선수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예스맨>에서 재능과 노력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놓고 토론을 했다. 농구 선수 출신 하승진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신체 조건을 타고났기에 농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키와 같은 하드웨어는 넘어설 수 없는 재능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남일은 박지성을 어릴 때부터 지켜봤는데, 눈에 띄지 않던 선수가 엄청난 노력으로 재능을 넘어선 사례라고 소개했다. 각 종목에서 톱클래스였던 선수들조차 이 질문 앞에서 모두 고민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솔직히,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선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단계에서 도저히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재능 앞에서 좌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동시에, 지독한 연습으로 재능의 벽을 뛰어넘는 사례 또한 지켜봤다. 그렇기에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자기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조차 이러하니,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

    2026.03.31 19:59

  • [공감]인간인 난 몰라도 컴퓨터인 넌 그러면 안 되지
    인간인 난 몰라도 컴퓨터인 넌 그러면 안 되지

    AI 팀에서 일하면서 챗GPT의 폭발을 한복판에서 겪었다. MS의 AI 팀에 있었던 나는 생성형 AI를 많이 다루게 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 배신당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평생 개발자로 일하면서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긴 했으나 그래도 오래 함께해온 동반자로서 컴퓨터 시스템을 존중해온 이유가 있었다. 바로 ‘결정성’이다. 간단히 말하면 전자계산기에 1+1을 입력하면 언제나 2가 나온다는 확실성이다. 이것은 내가 물구나무를 선 채 1+1을 입력하든, KTX 안에서 흔들리며 타이핑을 하든 결과는 같았다. 그런 결정성이 좋았다. 인내심 부족하고 변덕스러운 내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도, 내가 만들어놓은 로직은 언제나 쓰인 그대로 실행되고 결과 역시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좋았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변했다. 생성형 AI는 비결정성으로 악명이 높다. 같은 질문을 해도 어제와 오늘의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모델이 단순히 하나의 정답을 꺼...

    2026.03.24 19:50

  • [공감]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밥 퍼거슨은 과거에 혁명가였다. 무력 투쟁을 도모하는 반정부 조직 ‘프랜치 75’에서 폭탄 전문가로서 활약했다. 폭발물을 제조하고 설치해 차별과 배제의 울타리를 부수려 했으며, 가진 자들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곳간을 열어젖히고자 했다. 비유로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런 방식으로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국경지대 군 기지를 습격해 구금소에 갇힌 미등록 체류자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은신한 지 16년이 넘은 현시점엔 약과 술에 찌든 일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의지조차 품지 못한다. 체제 변혁을 위해 학습했던 급진적 이론들도 거의 다 잊었다. 좌파 역사관은 학부모 상담 도중 딸의 역사 교사 앞에서 ‘맨스플레인’ 할 때나 쓰일 따름이다.딸 윌라가 납치당하자 밥은 한물간 할리우드 액션물에서 하듯 손수 구출하려고 총을 들고 나선다. 그리하여 그간 감추어온 비장의 액션을 선보이는가. 아니다. 시종일관 허둥거리고, 난간 넘다 굴러떨어지고, 자동차...

    2026.03.17 20:00

  • [공감]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

    “이곳에는 버스가 오지 않습니다.”얼마 전 견학 갔던 한 요양원 건물 입구 옆에 작은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었다. 처음에는 요양원 면회객들이 이용하는 정류장인가 생각했다. 그래서 버스가 얼마나 자주 오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바로 그것이었다.그곳은 치매 노인들을 위해 마련된 이른바 ‘가짜 버스정류장’이었다. 이 작은 공간에는 치매 돌봄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치매가 진행되면 많은 환자들이 목적 없이 배회하는 증상을 보인다. 이때 직원들은 환자를 나무라는 대신 “저기 버스정류장이 있으니 잠시 기다려 보시겠어요?”라며 정류장으로 안내한다. 벤치에 앉아 잠시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조금 가라앉는다. 그리고 잠시 후 “버스가 조금 늦어지는 것 같으니 안에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라고 하면 많은 환자가 자연스럽게 시설 안으로 돌아온다고 한다.이 아이디어는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요양시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회하는 치매 노인들이 대부분 버스나 전철 같...

    2026.03.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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