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를 지켜야 할 자는 누구인가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내일 31일을 끝으로 지방선거 선거운동이 마무리된다. 선거운동 기간 후보들 못지않게 열심히 움직였던 이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지유세를 하는 현장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친 여러 활동가들이다. 그다지 특별한 행동은 없었다. 피켓, 현수막을 들고 차별지법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고, 또다시 지방선거를 이유로 법 제정을 미뤄서는 안 됨을 이야기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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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지켜라. 후보와 의원들이 우리의 행동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가운데, 현장에서 자주 들은 이야기다. 무엇이 예의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예의의 뜻에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시민으로서 차별금지법을 세 차례 발의한 다수당 의원들을 향해 제정을 요구하는 것과, 국회의원으로서의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중 무엇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일까.

정말로 무례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지금도 반복되는 차별이다. 얼마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7년 동대문구 시설관리공단이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의 체육관 대관을 취소한 것을 성소수자 차별로 보고 동대문구와 공단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판결문을 통해 사실들이 드러났지만, 동대문구와 공단의 행위는 너무나도 모욕적이었다. 성소수자 행사가 미풍양속에 어긋난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대관취소가 차별이라는 이야기들 듣자 공사를 이유로 취소한다는 핑계를 댔다. 다른 대관 일정이 있음에도 빈 일정이 없다며 거짓말을 했으며, 법정에서는 연필로 대장을 작성하여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황당한 변론을 했다.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 시 책임을 묻는 분명한 법이 있었다면 동대문구와 공단이 과연 이러한 모욕적인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

정말로 무례한 것은 무엇인가. 공론장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혐오표현이다. 얼마 전 사퇴한 김성회 전 대통령 종교다문화비서관이 위안부 피해자를 비하하고 ‘동성애는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한 일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선거운동기간 시작 전인 지난 18일 지방선거 과정에서 정치인의 혐오표현을 예방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여전히 선거운동 과정에서 혐오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다. 교육감 토론회에서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인식 아래 ‘동성애를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는 발언이 나왔고, ‘전교조OUT’이라는 구호를 낸 후보들에 대해 전교조에서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공론장에서의 혐오표현을 바로잡기 위한 법제는 부족하다. 2021년 장애인 당사자들이 상대 진영 정치인을 비하할 목적에서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발언을 한 정치인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2022년 4월 법원은 이를 기각하였다. 해당 발언들이 장애인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임은 인정되지만,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 불법행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모욕, 명예훼손의 법리를 넘는 법이 있다면 장애인들이 받은 이러한 모욕은 보상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난 4월11일부터 차별금지법 있는 봄을 요구하며, 수백명의 사람들이 매일 국회 앞을 지키고 4인의 활동가가 수십일간 단식을 했다. 그럼에도 국회는 지난 25일 공청회 외에 끝내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들어가지 않았다. 시민의 절대 다수가 찬성하고 곡기까지 끊어가며 평등을 바라는 외침을 외면하고, 차별의 현실을 방치한 국회의 태도는 과연 자신의 도리를 다한 것인가.

46일간의 단식투쟁과 농성은 마무리되었지만 혐오와 차별에 맞서 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하반기 국회 원 구성이 시작된다. 부디 후반기 국회가 즉각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이들에게 예의를 지켜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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