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위협의 교훈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한국은행이 2개월 연속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대폭 상향했다. 지난 2월에 이미 1.1%포인트 올린 데 이어 이번에도 1.4%포인트나 상향한 것이다.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 4.5%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4.7% 이후 최고치다. 내년에는 2.9%로 안정되겠지만, 내년 초까지는 4%대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경제성장률 전망도 올해와 내년 2.7%, 2.5%로 각각 0.3%포인트, 0.1%포인트 하향했다. 코로나19 재확산에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봉쇄 등에 따른 영향이 맞물린 결과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이런 가운데 국내도 성장정체(stagnation)와 물가급등(inflation)의 조합, 즉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최근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8%대로 올라서며 오일쇼크 이후 최고치로 치솟는 한편, 1분기 경제성장률이 연율 -1.5%까지 떨어진 바 있다. 물론 미국의 1분기 침체는 러시아 전쟁 개시와 맞물린 일시적 재고조정의 영향이 강하고, 이후 회복세로 돌아서게 되면 올해 3%대 후반의 성장률이 기대된다. 국내 역시 전망 하향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장률(2%대 초반 추정)을 상회하는 성장이 예상된다.

스태그플레이션 진단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지만, 주요국에서 통화긴축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대규모 부양책을 정리해야 하는 데다 인플레이션 급등에 맞서야 할 필요성이 커진 탓이다. 코로나19 상흔으로 재정 긴축을 서두르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당분간 통화정책에 긴축의 하중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과거 경험에 따르면, 공세적 통화긴축은 대부분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결국 인플레이션 안정이 지연되면서 성장둔화 위험이 더욱 커지는 상황, 한때 세계경제를 호령했던 버냉키나 서머스가 제기한 스태그플레이션 위협론의 실체가 그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협은 1970년대 오일쇼크의 악몽에 기반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공급충격이 주요 동인이었다. 물론 현재 유가 상승폭은 당시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고, 경제의 에너지 의존도 또한 40%가량 떨어졌다. 하지만 원유를 넘어 에너지 전반, 나아가 농산물과 금속으로까지 공급충격이 확산된 데다, 코로나19 후유증과 결부된 생산·물류 차질이나 각종 지정학적 갈등의 지속에도 주의해야 한다. 대신에 인플레이션 기대 관리와 관련해 한편으로는 중앙은행의 버팀목 역할이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책실기의 위험과 함께 암호화폐의 도전까지 감안하면 그 신뢰성을 자신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의 또 다른 축, 즉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 간의 상호 악순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1970년대는 자본주의의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기업 수익성과 생산성이 악화되던 시점이었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경제적 역동성을 감안하면 다소 거리가 있다. 아울러 당시 임금-물가 악순환을 이끌었던 노동계의 막강한 교섭력도 크게 약화된 게 사실이다. 오히려 최근의 임금 상승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구인난 영향에다 ICT나 플랫폼 기업 중심의 높은 수익성과 가격결정력에 기반한 생산성 임금 혹은 효율성 임금의 성격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세적 통화긴축의 부작용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미 지적했듯이, 인플레 억제를 위한 통화긴축이 정작 스태그플레이션 위협을 가중시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면서 경제 연착륙을 이끄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플레이션에 맞선 통화긴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자산시장 과열이나 가계부채 과잉과 같은 거시건전성 관리 측면 외에도 취약계층 지원 및 공정 경쟁, 나아가 공급망 관리 등 미시적·산업적·통상적 차원에서도 많은 정책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스태그플레이션과 통화긴축에 집착하기보다는 경제 전반의 내구력과 유연성을 제고할 섬세한 정책 설계와 운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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