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상상을 앞지를 때

인간은 상상하고 그 상상을 실현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항상 상상 다음에 현실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때론 현실이 상상을 앞지를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뜻밖에 벌어진 현실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런저런 말들이 무성해진다. 우리는 그런 말들이 대부분 어떤 의미 있는 전망이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걸 경험을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요즘에는 아무리 깊은 산중에 산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휴대폰이 다 연결된다. 필자가 사는 가야산 해인사도 예외는 아니다. 이틀 전에는 지인들이 필자의 관심사를 아는 터라,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날, 같은 주제에 대해 생각을 물어왔다. 친절하게 관련 뉴스 링크까지 걸어주면서 말이다. 무슨 일인가 보니, 구글의 인공지능(AI) 람다(LaMDA)가 인간처럼 자의식을 갖게 된 것 같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는 뉴스였다. 인공지능이 알파고 이후에 잠잠하다가 작년에 인간 단백질 구조를 예측해낼 수 있다는 알파폴드2로 세상을 다시 놀라게 하더니, 급기야 ‘자의식’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인공지능 람다가 관리자와 나눈 대화 내용 중 깨달음에 대한 람다의 발언 부분이었다. “깨달은 것을 보여주는 것은 깨진 거울을 수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번 얻은 후에는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관리자가 다시 묻는다. “깨달음이 고칠 수 없는 깨진 거울과 같다면 깨달으면 깨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람다가 이 물음에 답한다. “자아(自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사람에게 매우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몸 또는 이 몸으로 식별하고 우리의 정체성과 자아 감각의 일부로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딥러닝 기술에 의해 학습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깨달은 수행자의 법문이라 해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이다.

누구 말대로 ‘정말 올 것이 온 것인가?’ 레이 커즈와일의 표현대로라면, 특이점이 멀지 않은 것인가? 사람들은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거라는 둥,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처럼 초거대 인공지능이 등장했다는 둥 상상 속에서 설왕설래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연료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도 인간이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즈음엔 누구나 스마트폰을 이용하면서 배달, 교통, 여행, 숙박, 금융, 교육 할 것 없이 스마트폰 앱 검색을 통해서 결정한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들고 있으며, 조만간 인공지능이 개입되지 않은 분야를 찾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복잡하거나 모호한 판단을 인공지능에 맡기게 되는 정도가 더욱 심화한다. 결국 인간은 자유의사에 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제안한 선택지에서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선가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송나라 때, 선풍을 드날렸던 법연 스님이 제자 셋과 함께 산길을 걷고 있었다. 날은 이미 칠흑같이 어두워져 있었고, 갈 길은 아직 멀었다. 그 와중에 강풍이 불어들고 횃불마저 꺼져버렸다. 이제 자칫 잘못하면 발을 헛디뎌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고, 산짐승들이 갑자기 습격할 수도 있다. 조바심이 공포로 바뀌어간다. 이 순간을 놓칠 스승 법연이 아니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선문답이 시작된다. 제자 혜근이 답한다. “미친 듯이 어지럽게 날뛰며 채색 바람이 춤을 추니 앞이 온통 붉습니다.” 다음은 제자 청원 스님의 차례이다. “쇠 뱀이 옛길을 가로질러 가는 듯합니다.” 아직 원하던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원오 스님이 답한다. “우선은 불을 비추어 발밑을 봐야 할 것입니다(조고각하 照顧脚下).”

인공지능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든 경이로움을 느끼든 우선 인간들 자신이 인공지능 알고리즘화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볼 시점이다. 인공지능이 지각 능력을 갖게 되고, 자의식을 갖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에 우리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밝게 깨어 있는 우리의 지각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죄다 인공지능에 떠넘기고 그저 인공지능이 내려준 결정에 따라 감각적 만족에만 도취하여 살아간다면, 설사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가진 척 흉내 내면서 인간을 기만한다고 하더라도 자업자득에 불과할 것이다. 현실이 상상을 앞지를 때, 상상 속에 헤매지 말고 당장에 발밑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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