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과 가치 사이, 미술시장서 잊혀지는 것들

도재기 문화부 선임기자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극적인 삶, 작품마다의 미술사적 가치와 사연은 그와 작품을 신화화시킨다. 작품값 상승의 요인이기도 하다. 생전의 고흐가 그림이 팔리지 않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은 유명하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600여통에는 생활비를 보내주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 작품이 팔리지 않는 무명작가의 참담함, 자괴감이 오롯이 드러난다.

도재기 문화부 선임기자

도재기 문화부 선임기자

고흐와 같은 시대인 조선 후기로 눈을 돌리면 오원 장승업이 떠오른다. 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을 대표하는 ‘삼원’의 막내다. 고흐보다 열 살 많은 오원은 고흐와 달리 생전에 그림 주문이 쏟아졌지만 삶과 예술활동은 파란만장했다. 그림값에 휘둘리지 않는 예술가적 기행도 두드러진다.

자본주의 태동 이래 예술과 자본의 오묘한 관계는 늘 논쟁의 대상이다. 창작활동을 위해선 돈이 필수적이지만 돈에 종속된 예술은 그 한계가 분명해서다. ‘쓸모가 없는 예술’이 ‘진짜 예술’임을 강조한 오스카 와일드는 “은행가(자본가)들은 예술 이야기를 하고, 예술가들은 돈 이야기를 한다”고 일갈했다. 서구에서 미술이란 개념이 등장하고, 미술시장이 형성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19세기 말 경매사·화랑 등 시장이 만들어지고, 20세기 자본주의 심화 속에 세계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작품’은 ‘상품’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미술계에선 “상품”이란 말 대신 “작품”이라 강조하지만 미술이 감상과 향유 대상을 넘어 주식처럼 투자 대상이 된 것이다.

국내 미술시장이 뜨거워지며 급성장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통계를 보면, 2019년 3812억원이던 시장 규모가 지난해는 무려 9223억원으로 커졌다. 주요 화랑과 경매사, 아트페어마다 구매자들이 몰렸다. ‘아트테크’ ‘블루칩 작가’란 말이 일상화되고, 백화점과 명품가게에서나 보던 ‘오픈런’까지 등장했다. 국제적으로 코로나19 대응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통한 원활한 정보 유통 속에 ‘MZ세대’의 적극적인 시장 참여, 공동구매(조각투자) 플랫폼 같은 투자 방식의 다양화 등 시장 활황세를 이끈 요인들은 많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면서 향후 미술시장의 추이가 주목된다. 조정 전망도 나오지만 미술계는 열기가 이어져 올해 시장 규모 1조원 돌파를 기대한다. 특히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오는 9월 서울에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함께 열리는 것도 긍정적 요인으로 본다.

한국 경제 규모에 걸맞은 미술시장의 성장은 절실하고 또 반길 일이다. 그런데 성장통이란 분석도 있지만 거품이 끼면서 과열됐다는 평가도 만만찮다. 더욱이 시장과 미술 생태계의 건강성과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는 미술계 주체들의 부정적 양태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수요 측에서는 작가 후원·지원을 바탕에 둔 투자보다 주식 단타매매같이 차익만 노리는 ‘묻지마 투자’의 투기적 양상이 엿보인다. 미술품의 가치는 여느 상품들과 달리 정량화하기 힘든 다양한 요인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작가의 창작활동 정도, 작품의 예술적 성취도, 비평계와 미술관의 미술사적 분석과 평가, 미래가치 등 기본적 기준은 있다. 구매자들이 이런 기준들을 얼마나 고려하는지 의문이다.

미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소수의 주요 화랑들이 투기적 성향을 부추기는 것도 문제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식으로, 합리적 구매를 이끌거나 미래가치가 높은 작품을 소개하기보다 눈앞의 판매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미술계의 평가도 없는 특정 작가 작품값이 치솟는 비정상적 모습을 보인다. 대중의 취향과 유행을 좇는 데 급급한 일부 작가들, 그 많은 평론가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우려스럽다.

한국 미술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견인하는 요인들은 물론 많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할 결정적 시기다. 미술계는 2006~2007년 호황기 직후 시장이 급전직하하는 아픈 경험을 했다. 당시에도 새 구매자들이 대거 등장했고 구입한 작품들은 결국 반토막 났다. ‘우아한 사기꾼’이라는 질타가 생각난다. 이제 교훈을 되새기고, 미술계 주체들은 저마다 본연의 역할을 차분히 성찰할 때다. 무엇보다 시장이 급성장하는 속에서 잊혀진 것들을 회복하는 게 시급하다. 작품 가격이 아닌 가치를, 시장이 아닌 미술가·미술품의 의미를 돌아보는 게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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