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전부는 아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오랜만에 찾은 국숫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여름엔 콩국수가 일품이었는데, 이제는 다시 그 맛을 볼 수 없게 되었네요. 단골 가게가 문 닫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오늘 따라 뭔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듯 상실감이 큽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요리를 즐길 때 보통 맛을 즐긴다고 합니다. 더 정확히는 미각으로 표현되는 맛, 후각으로 표현되는 향을 즐기는 것이죠. 이 두 가지 감각을 합쳐 풍미라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리의 경험에 이들 감각만 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시각도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요리를 평가하는 데 시각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보기가 좋지 않으면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정보의 관점에서도 시각은 중요합니다. 잠깐 보기만 해도 그것이 먹을 만한 것인지, 또 맛은 어떨지 재빠르게 판단이 가능한 것이죠. 맛을 보려고 무작정 입에 넣었다가 당할지도 모를 봉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시각 이외에도 요리 경험과 관련 있는 또 다른 감각이 있습니다. 특히 매운맛을 즐기는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데요, 청양고추의 얼얼함은 다른 미각들과 분명 차별성이 있습니다. 캡사이신이란 물질에 의한 세포자극으로 아픔을 느끼는 통각의 일종인데, 미각은 아니지만 우리 뇌는 다른 맛 신호들과 통합하여 맛에 대한 하나의 경험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양파의 알싸한 맛도 사실은 맛이 아니라 이러한 감각의 일종이죠.

그런데 몸의 세포들이 느끼는 이러한 감각들만이 또 전부는 아닙니다. 다른 중요한 감각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국숫집 앞에서 제가 느껴야만 했던 상실감과 관련이 있는 공감각입니다. 이것은 어떤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연달아 불러일으키는 경우를 말하는데, 예를 들어 어떤 소리를 들으면 그 즉시 어떤 색깔이 떠오르는 일이 그러합니다. 요리의 경우는 미각·후각·시각 등이 서로 연관되면서 확장되고, 더 나아가 요리 그 자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또 다른 감각들 또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뇌는 뉴런이라 불리는 수많은 신경세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의 연결구조가 생각을 만들어내죠. 그런데 이 구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형이 생깁니다. 특히 어떤 의미 있는 경험을 했다면, 그와 관련된 여러 감각들이 서로 연관되면서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있게 되죠.

지금은 사라진 국숫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히 맛에 대한 기억만은 아닙니다. 그 맛과 연관되고 확장된 또 다른 감각들 때문인 것이죠. 그곳에서 어울렸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 집처럼 포근하게 맞아주었던 주인 아줌마의 미소,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팝송 등 사람들은 이것들을 추억이라고도 부릅니다.

요리는 복합적인 경험입니다. 맛으로만 평가하기엔 너무나도 다채롭고 깊은 경험이죠. 맛과 함께 이런 경험들 또한 소중하게 여겨졌으면 합니다. 인생 맛집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 사라지면 추억들 또한 사라져 서글퍼질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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