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의존성 성격장애의 비극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매니저 톰 파커 대령(왼쪽)과 엘비스 프레슬리.

매니저 톰 파커 대령(왼쪽)과 엘비스 프레슬리.

전후 젊은이들의 성적 충동은 로큰롤로 분출되었다. 무대의 중심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었다. 얌전히 음악을 감상하던 소녀들이 엘비스에 홀려 괴성을 지르고 급기야 속옷을 벗어 던졌다. 엘비스가 흔드는 요란하고 음란한 골반은 어른들을 심란하게 했다. 엘비스의 흥건한 로큰롤은 시대를 흥분시킨 사건이었다.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나는 70대 이상 할머니들의 얼굴에서 그 시절의 잔망스러운 소녀를 찾을 때가 있다. 청춘의 달뜬 표정을 복원하려 애쓰지만 가난한 상상력 탓에 실패한다. 최근 개봉한 <엘비스>에서 소녀들을 만날 수 있다. 열광 끝에 혼절하는 소녀들의 광기와 말세를 한탄하는 부모들의 당혹감이 교차된다. 영화는 전대미문의 기현상에 주목하는 흥행사 톰 파커 대령(톰 행크스)의 시점으로 희대의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엘비스는 노래를 관능적으로 표현할 줄 알았고, 다양한 가창법을 동원해 ‘젊음이 갖는 호소력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구현한 최초의 가수’였다.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솔로 가수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명이 길지 못했다. 요절한 엘비스의 사인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세간에 퍼져 있다. 배즈 루어먼 감독은 소문을 근간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영화를 제작했다.

서커스 흥행사였던 톰 파커 대령은 네덜란드 국적의 불법체류자였다. 대령 칭호도 군 경력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별명일 뿐, 여러모로 수상쩍은 남자였다. 수완이 좋아 엘비스를 전국구 스타로 띄웠다. 음반 판매와 공연은 물론 영화 출연, 굿즈 판매 등으로 엘비스가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파커 대령은 사람들의 비난이 일자 “내가 엘비스 수익의 반을 챙긴 게 아니라, 내가 번 돈의 반을 엘비스가 가져간 거야!”라며 항변했다. 파커 대령의 방약무인한 태도는 엘비스의 때 이른 죽음에 맞물려 팬들에게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영화 <엘비스>는 냉혈한 매니저에 희생당한 천재 가수 이야기로 단순화시켰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엘비스의 전 부인 프리실라를 만난 톰 행크스는 파커 대령에 대한 험담은커녕 좋은 사람이었다는 뜻밖의 평가에 당황했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파커 대령과 엘비스의 사이를 관찰한 지인들의 증언도 프리실라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데뷔 후 일정 기간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죽기 전까지 불합리한 계약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영화의 내용과 달리 엘비스는 파커 대령에게 저항한 적이 없다. 마치 장교와 사병의 위계처럼 파커는 엘비스를 관리하고 통제했고 엘비스는 순종했다. 사람들은 납득하기 힘든 의문 앞에 서면 습관적으로 음모론에 기댄다. 매니저의 가스라이팅으로 희생당한 위대한 스타의 비극. 음모론은 그럴듯한 플롯에 실려 실화로 유통된다.

가스라이팅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자와 의존적 성격장애자 사이에서 생성되는 심리조정술이다. 이 심리조작 기술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병이라 진단될 만큼의 의존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파커 대령이 엘비스의 심리를 조정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가 매니저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던 것은 분명하다. 엘비스의 비극은 의존성 성격장애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사이비 종교를 추종하는 신도들은 대부분이 의존성 성격장애자들이다. 광신도들은 재산 탕진을 넘어 교주를 따라 집단 자살도 주저하지 않는다. 혹세무민한 죄로 교주가 비난받고 처벌되면 잠시 잊혀졌다 부활한다. 학습 효과는 없다. 인간의 난치성 의존성이 반지성주의를 만날 때 언제 어디서건 재발한다.

경제가 심상치 않고 정국은 뒤숭숭하다. 사이비 종교가 전도를 시작할 최적의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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