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사회와 그 적들

박종성 논설위원

세상을 잘못 읽으면 정책은 산으로 간다.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현실을 안이하게 보거나 곡해, 오독, 자만하고 세운 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반발에 직면하는 길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금융부문 민생안정 계획’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박종성 논설위원

이달 정부가 대책을 냈다. 주식과 가상통화 같은 위험자산 투자로 손실을 본 청년층의 채무이자 부담을 줄여주고, 코로나19 등으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 부실차주에 대해 60~90%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것이다. 저신용 청년들에게는 이자를 30~50% 깎아주고 이자율도 대폭 낮추겠다고 했다.

물론 정부도 나름 이유를 댔다.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가계부채로 경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경기침체,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지원대책을 마련해 위험을 줄이고 돈을 빌린 이들에게 회생 기회를 주자는 뜻이라고 했다. 이런 조치들이 궁극적으로 국가에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에 정책을 집행하는 데서 발생할 수 있는 다소의 문제는 묵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국민 전체의 후생을 위해서’라고 표현했다.

정부는 대책을 발표하며 앞으로 위기에 맞설 선제적 대응책이라며 자화자찬했지만 오히려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것이라는 반발에 직면했다. 반대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추가로 기자회견을 열고 궁박한 변명에 나서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왜 정부는 궁지에 몰렸는가. 공정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했기 때문이다. 먼저 저신용 청년 대책을 보자. 과연 ‘주식과 가상통화 투자로 손실을 본 청년’이 국가가 세금을 들여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투자는 자기책임하에 하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위험을 택한 만큼 자신의 선택에 따른 이득도 피해도 본인에 귀속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에 부합한다. 자신이 투자를 해 이익을 보았을 때 국가에 이익을 반환하지 않듯 손실을 보았을 때에도 스스로 상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지원한다며 부실차주의 빚을 탕감해주는 사안도 온당한지 따져보자. 정부는 빚을 90일 이상 연체하는 채무자를 대상으로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멀쩡한 채무자들도 ‘빚을 갚지 않고 버티라’는 말이 나온다. 인터넷을 보라. 벌써 ‘빚 탕감받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컨설팅 전문업체들이 우후죽순 설치고 있다. 물론 국가의 역할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은 두말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포퓰리즘식 퍼주기를 해줘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무분별한 빚 탕감은 성실히 빚을 갚은 ‘건전한 채무자’의 소외와 박탈감을 가져온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은 원칙을 지키고 채무를 상환하며 세금을 내는 이들이다. 역차별을 하면 누가 이를 공정하다고 보겠는가.

문재인 정부 이래 시대정신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의제가 있다면 공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전 정부 시절 ‘기회는 균등할 것이고, 절차는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조국 사건’도 결국 공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데 따른 파장이었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도 출범하면서 국정운영 원칙으로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자유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키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공정이란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수평을 이루는 천칭과 같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것을 말한다. 공정은 ‘아빠찬스’ ‘엄마찬스’ ‘백’ ‘청탁’을 배격한다. 반칙, 불법, 편법을 거부한다. 사심이 작동하면 공정은 무너진다. 사심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기제가 바로 절차를 따른 것이며 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공정은 형해화된다.

그러나 작금의 사건들, 즉 장관 인사와 대통령실 채용 과정에서 불거진 사적 채용 논란을 보면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더욱이 대통령실 직원 사적 채용을 두고 ‘9급을 가지고 뭘 그러냐’는 태도에는 아연 말문이 막힌다. 논란의 핵심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적반하장의 대응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했다. 생각도 달라졌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온정주의적 묵인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되지’라는 원칙 존중이 사회의 규범이 되었다. 높아진 공정의식에 눈높이를 맞추지 않는 한 앞으로의 정책도 헛바퀴를 돌릴 것이다.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