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거절하려 만든 ‘궁합’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남녀의 사주를 따져 배우자로서 적격인지 알아보는 방법을 궁합이라고 한다. 궁합의 기원은 기원전 1세기 한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의 골칫거리는 흉노족이었다. 한나라는 수시로 국경을 침범하는 흉노를 어르고 달래며 우호적 관계를 맺고자 애썼다. 한나라가 저자세로 나오자 기고만장해진 흉노의 우두머리는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했다. 귀한 공주님을 오랑캐에게 시집보내다니 될 말인가. 그렇다고 대놓고 거절하면 후환이 두렵다. 점잖은 핑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궁합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궁합은 당나라에 와서 체계화된다. 당나라는 세계제국이었다. 수많은 외국인 유학생과 상인들이 당나라 수도 장안의 문을 두드렸다. 신라인, 일본인, 인도인, 아랍인, 심지어 아프리카인까지 몰려들었다. 일부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황실과 귀족 가문에 청혼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다문화 사회라지만 외국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법. 당 태종은 여재라는 사람을 시켜 ‘궁도합혼법’을 만들어 외국인의 청혼을 거절할 명분으로 삼았다. 요컨대 궁합은 애당초 혼인을 거절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 궁합이 언제 들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이 당시 세자였던 문종의 배필을 구하면서 사주를 아는 신하에게 점을 치게 했다고 하니, 조선 초기부터 남녀의 사주를 토대로 운명을 점치는 방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그것이 지금 유행하는 궁합과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궁합’이라는 용어는 조선 후기에 비로소 등장한다. 혼인이 결정되면 신랑 집에서 신랑의 사주를 신부 집에 전달한다. ‘납채’라고 한다. 아마 이것으로 궁합을 보았을 것이다.

<일성록>에 따르면 정조 임금도 세자빈 간택 과정에서 사주와 궁합을 보았다. 국복( 國 卜) 김해담이라는 자를 특별히 불러왔다. 국복은 국가 공인 점술가다. 김해담은 세자빈 후보 중 한 사람이던 김씨(훗날 순원왕후)의 사주를 보고 말했다. “몹시 길하고 몹시 귀한 격입니다. 이 사주로 이 자리에 오르면 장수와 부귀를 모두 갖추고 복록이 면면히 이어져 자손이 번창할 것이니 더 이상 따질 것이 없습니다. 궁합도 좋습니다.” 정조는 김씨를 세자빈으로 삼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순원왕후 김씨는 69세까지 살았고, 철종대까지 왕실의 어른으로 각별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자녀복은 없었다. 모두 요절했다. 자손이 번창한다는 점술가의 예언은 완전히 어긋났다.

고종황제도 세자빈을 간택할 때 사주와 궁합을 보았다. 국복 안경린이 세자빈 후보 민씨(훗날 순명효황후)의 사주를 보더니 극찬했다. “다섯 별이 규수에 모였으니 하늘이 태임을 내려준 것이며, 달이 하늘 가운데 이르렀으니 온 나라가 함께 밝을 것이며, 날짜는 복되고 시각은 귀하니 이루어진 형세가 원만합니다. 최상의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규수는 문장을 주관하는 상서로운 별이고, 태임은 성녀로 추앙받은 주 문왕의 어머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주라는 말이다. 고종이 이어서 물었다. “궁합은 어떠한가?” 안경린이 대답했다.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의 격입니다.” <승정원일기>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장수하고 부귀하며 아들도 많을 운명이라던 순명효황후 민씨는 33세로 요절했고 자식도 없었다. 김해담과 안경린은 당시 나라에서 제일가는 점술가였을 텐데, 그들이 본 사주와 궁합은 전부 빗나갔다. 사주와 궁합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대머리 남자와 주걱턱 여자의 궁합이 좋다는 논문의 결론이 과연 어떠한 근거와 논리로 도출되었는지 말이다. 대학이 재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검증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하니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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