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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현실]위정척사론 재인식
    위정척사론 재인식

    1870년 전후로 조선은 외세와 거칠게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가 그것이다. 이제 조선은 외세에 어떻게 대응할지 입장을 정해야 했다. 이에 조선에서는 사회 계층에 따라 몇가지 입장이 등장했다. 이 입장들은 이후 정치적, 국제적 상황 변동에 따라 착종되고 변주되면서 수십년에 걸쳐 이어졌다.처음 제기된 입장은 ‘위정척사’와 ‘개화’였다. 위정척사는 전통적 지식인들의 주장이었다. 일본의 강요로 1876년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조선 조정이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최익현 등은 일본이 서양과 다를 바 없고, 개항을 하면 조선의 경제가 무너지고 윤리관이 파괴된다고 경고했다. 지금 봐도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위정척사는 흔히 수구와 동일시되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사실과 다르다. 그것은 그 시대 조선 지식인들의 정체성이자 행동 원칙이었다. 이 안에도 온건파와 급진파가 있었다. 전자는 ‘조선의 정신은 지키고, 서양의 기술만 받아들...

    11시간 전

  • [역사와 현실]러다이트와 터미네이터
    러다이트와 터미네이터

    오늘날 모든 길은 인공지능(AI)으로 통한다. 기업도 정부도 대학도 온통 인공지능에 몰입 중이다. 우리의 일상도 인공지능이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보고서나 포스터를 작성할 때 둘도 없는 친구다. 그것은 어쩌면 작가보다 더 작가답고, 화가보다 더 화가답다. 요컨대 인공지능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딥러닝을 통해 놀라운 학습 및 사고 능력을 갖춘, 말 그대로 생각하는 기계다. 그러나 생각하는 기계가 우리를 ‘대신하여’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인간지능은 급속히 쇠퇴하는 반면 인공지능은 무섭게 진화하며 인간 같은 기계가 퇴화한 인류를 지배하게 되지 않을까?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공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세기 초 영국 노동자들은 기계 탓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하여 기계 파괴 운동을 벌였다. 이는 러다이트로 불렸는데, 그 이름은 공장주에게 보낸 협박 편지의 명의, 즉 “불의를 바로잡는 군단 사령관 러드”에서 유래했다. 당국은 이 가상의 러드 장군 추종자들을 가차 없이 교...

    2026.07.15 19:53

  • [역사와 현실]이름 없는 연대도 역사가 된다
    이름 없는 연대도 역사가 된다

    1969년 여름 대학가에서 박정희 정부의 3선개헌 시도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일 때 일이다. 정부는 시위를 과격하게 진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표면적으로는 3선개헌과 아무 관계가 없던 주한미대사관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진압을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 타고 온 트럭에, 이것이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은 차량이라는 것을 알리는 미 국제개발처(USAID)의 표식이 선명히 찍혀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누군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일군의 미국인들은 표식에 주목하여 포터 주한미대사에게 찾아가 3선개헌에 중립적이라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진정성이 있느냐며 항의를 했다.난처해진 포터 대사는 의외로 간단하게 문제를 처리했다. 트럭에 페인트칠을 다시 해 USAID 표식을 가려버린 것이다. 당시 포터 대사가 페인트칠을 다시 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미 국무부에 보고한 기록이 아직 남아 있다. 물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1969년에도 한국의...

    2026.07.08 19:55

  • [역사와 현실]자기 정당성의 역사
    자기 정당성의 역사

    1635년 음력 5월, 당사자들은 심각하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싸움이 조선 최고 학부 성균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서인이 성혼과 이이를 문묘에 종사(從祀)하려 하자 남인이 이를 반대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서인은 문묘 종사에 반대하는 남인을 명륜당에서 쫓아냈고, 남인은 동쪽에 있는 작은 협실에 자리를 틀었다. 그러자 서인은 자신들이 이미 그 방에 상소청을 설치했으므로 나가달라 했고, 남인은 자신들도 그곳에 상소청을 설치했다며 유치한 설전이 오갔다.유교가 국교였던 조선에서 문묘 종사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문묘(文廟)는 문선왕묘(文宣王廟)를 줄인 말로, 문선왕은 공자의 시호다. 공자를 비롯한 유학의 중요 선현들 위패가 문묘에 모셔지면서 이곳은 조선의 국가 이념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런데 성균관에 설치된 문묘에는 중국 선현들뿐 아니라 유학의 도를 이은 것으로 평가받은 동방의 유학자들도 포함되었다. 동방5현, 동방18현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동방, 즉...

    2026.07.01 19:57

  • [역사와 현실]동서분당과 조제보합
    동서분당과 조제보합

    6·3 지방선거 후 여당이 8월 전당대회 국면으로 빠르게 전환된 듯하다. 여기서 당대표를 선출하는데, 새 당대표는 2028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자당 출마자들에 대한 공천권을 갖는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만 당대표 경쟁에 따른 당내 권력투쟁이 파열음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학에서는 현재에 대한 역사가의 안목으로 과거를 이해하기도 하지만, 분석이 이루어진 과거에 대한 이해로 현재를 재해석하기도 한다.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시대 선조 8년 전후의 정치적 양상은 흥미롭다.예나 지금이나 특정 시기의 정치적 상황은 대개 그 앞 수십년 전부터 있었던 일들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선조 즉위 초반의 양상을 이해하려면 1519년에 벌어졌던 기묘사화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 사건으로 일종의 왕당파이자 기득권 세력이던 훈구는 정치적으로 승리했고 그들에게 도전한 사림은 패배했다. 이후 사실상 여왕이나 ...

    2026.06.24 20:28

  • [역사와 현실]파시즘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파시즘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파시즘에 맞섰던 독일의 비판적 지식인 발터 베냐민의 글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고대 상형문자처럼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파시즘에 대한 그의 논평은 예리하면서 함축적이어서 여운이 길다. 그는 대중에게 사회를 바꿀 권리가 있지만 파시즘은 그들에게 오직 표현의 기회만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제 사회적 관계는 바꾸지 않고 대중을 조직한다는 말이다. 이로부터 파시즘은 모든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 언어와 상징, 의례, 이미지를 창조하고 조작함으로써 정치를 미화한다. 화려한 유니폼과 퍼레이드, 대중연설과 공공집회가 그런 정치의 미화를 잘 보여준다.베냐민의 논평은 파시즘에 대해 두 가지 통찰을 던져준다. 첫째는 파시즘의 목표가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중을 통해, 대중에게 말할 뿐이다. 이로부터 파시즘이 말한 것과 행한 것이 다르다는 비판이 나온다. 둘째는 파시즘이 대중의 불만과 욕구를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베냐민은 모든 파시즘 뒤에는 실패한 혁명이 있다고 말했다....

    2026.06.17 19:58

  • [역사와 현실]가자 향한 구호선단이 남긴 질문
    가자 향한 구호선단이 남긴 질문

    물이 무기가 되었다. 지난 4월28일 국경없는의사회가 발표해 화제가 된 보고서의 제목이다. 보고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어떻게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물 부족 사태를 야기했는지를 기록한다. 2023년 10월부터 이스라엘군의 작전으로 생존에 꼭 필요한 식수와 위생 인프라의 90%가 손상되거나 완전히 파괴됐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로고가 명확히 표시된 급수 트럭이 주민들에게 식수를 배급하는 도중에도 사격을 받았다. 물 공급에 필요한 자재의 반입도 조직적이고 고의적으로 지연되고 있다. 화장실이 없어 모래에 구덩이를 파고, 넘쳐 흐른 오물이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호흡기병과 설사병 같은 예방 가능한 질병이 퍼지는 건 당연지사다. 놀라운 건 지금이 휴전 중이라는 사실이다. 한번 시작된 폭력은 휴전 중에도 생명의 필수 조건을 처참하게 무기화한다.이스라엘이 인도주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2025년 5월, 이스라엘과 미국이 유엔의 구호물자 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해 설립한 ...

    2026.06.10 20:07

  • [역사와 현실]이념 정치의 현실적 덕목
    이념 정치의 현실적 덕목

    공식 선거운동 기간뿐 아니라, 준비 기간까지 포함하면 근 1년 이상 달려온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오랜 여정이 끝났다. 지역민들의 선택을 받은 이들과 그러지 못한 이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시간이지만, 지역민들 입장에서는 자기 선택에 대한 결과를 4년 동안 받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투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결과는 4년에 걸쳐 돌아오기 때문이다. 1427년 12월, 세종이 용안 현감 구서와 장단 현령 최득하, 옥과 현감 진자번, 청양 현감 고신민 등을 임지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던 것처럼 말이다.“지금 수령은 예전의 제후(諸侯)와 같다. 백성의 일을 내가 친히 맡을 수 없으므로 그대들을 뽑아 보내는 것이니, 그대들은 나의 마음을 몸으로 받들라. 백성들은 항심(恒心·변하지 않는 도덕적 마음)이 없어 절용(節用)하지 못하니 그대들은 백성들에게 절용을 가르치고, 농업과 잠업을 권해 생활을 즐겁게 하라. 근래 가뭄이 들고 금년 겨울은 기후가 불순하여 내년 일이 걱정되니, ...

    2026.06.03 22:39

  • [역사와 현실]마케팅과 정체성
    마케팅과 정체성

    화제였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못 보았다. 삼촌 세조에게 퇴위당해서 강원도 영월로 쫓겨가 17세에 살해된 단종 이야기라 들었다. 어떤 사회적 사건은 후속 사건을 계속해 빚어내며 그것이 일어난 사회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다. 1453년 세조가 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한 계유정난, 2년 뒤 세조의 즉위, 다시 2년 뒤 단종의 죽음은 그 후 조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건들을 빚어내며 조선 지식인들의 정치적 감수성에 영향을 주었다.세조 즉위 이듬해에 일어난 ‘사육신 사건’은 단종 복위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았다. 일부 현직 관리들이 다른 핑계를 대며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났고, 과거를 준비하던 젊은 유생들이 시험을 포기했다. 뒤이은 성종도 어려서 즉위했다. 그런데 그가 성년을 맞아 직접 통치하기 시작하자 오래 억눌렸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478년 20대 중반 유생들이 올린 상소가 조정을 뒤흔들었다. 세조의 신하들을 조정...

    2026.05.27 20:06

  • [역사와 현실]토끼는 항상 거북을 이겨야 할까
    토끼는 항상 거북을 이겨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 전 대통령인 오바마와 바이든, 전 하원의장 펠로시가 오물에 빠져 있는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를 올려 물의를 빚고 있다. 제목은 “멍청한 민주당원들(dumacrats)은 오물을 사랑해”이다. 여기서 ‘멍청한(dumb)’과 ‘민주당원들(democrats)’을 합성한 기상천외한 신조어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정치인들을 향해 “반역자” “저능아” “기괴한 자” “공산주의자 미치광이” 등 저속하고 노골적인 말폭탄을 퍼붓고 있다.이런 정치적 막말은 최근 민주당 전 부통령 후보가 트럼프 진영을 가리켜 “그들은 이상하다”고 꼬집은 것에 대한 응수다. 그러나 멀리 보면 민주당 전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한심한 자들(deplorables)”이라고 비하한 것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민주당 입장에선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어쨌든 현재 미국 정치는 멍청한 자들과 한심한 자들의 대립 구도에서 권좌...

    2026.05.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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