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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현실]승육(昇六)의 기쁨
    승육(昇六)의 기쁨

    9급에서 1급까지인 행정 공무원 직급에서 모든 승진이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의미가 큰 승진은 5급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사무관’으로의 승진은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진입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직급명에도 ‘관’이 붙고, 기초지자체의 경우에는 과장으로 보임될 수 있다. 중앙이나 광역지자체에서도 팀장급이니 권한과 책임이 큰 중견공무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5급에 바로 임용되는 시험은 ‘고시’라 불릴 정도로 어렵고, 9급부터 시작하는 공무원의 경우 평생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직급이 5급인 이들도 많다.조선의 관직은 9품에서 1품까지, 이를 다시 정(正)과 종(從)으로 나누어 총 18개의 품계가 있었다. 당연히 품계가 높아질수록 승진의 기쁨도 크겠지만, 공무원 5급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 품계는 6품이 아닐까 싶다. 1712년 음력 11월26일, 엄경수는 공무원 인사위원회에 해당하는 도목정사를 통해 정6품인 성균관 전적으로 승진했다...

    2026.01.14 20:13

  • [역사와 현실]한·일관계의 역사와 현실
    한·일관계의 역사와 현실

    660년 7월18일 백제 의자왕이 사비성에서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백제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었다. 백제의 지방군이 거의 온전히 남아 있었다. 백제의 운명은 3년 뒤 663년 8월에 치러진 백강구전투로 결정되었다. 이는 나당연합군 대 백제부흥군·왜국 연합군이 지금의 금강 하구에서 맞붙은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대전급 전쟁이다.왜국이 백강구전투에 쏟은 물량은 엄청나다. 왜국은 모두 3만7000명 병력을 약 1000척의 배에 실어 보냈다. 신라가 국력을 기울여 백제 공격에 동원한 병력이 5만명이었다. 왜국은 백제가 망하면 자신들도 곧 위험해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전투 패배 후 백제 유민들이 지금의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곧바로 나당연합군의 침입에 대비해 토성을 쌓았다. 미즈성(水城)과 오노성(大野城)이다. 그 성곽 뒤에 다자이후시(大宰府市)를 건설했다. 다자이후는 규슈 지방 전체를 다스리는 관청으로 약 500년 이상 지속되며 번영했다. 지금도 그 유적이 ...

    2026.01.07 20:02

  • [역사와 현실]자본주의는 독점이다?
    자본주의는 독점이다?

    현대 역사학의 장르 중 전체사라는 것이 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사건사에 맞서 잘 변하지 않는 역사의 심층 구조를 밝히려는 야심적 시도다. 전체사를 대표하는 역사학자가 ‘역사학의 교황’이라 불린 페르낭 브로델이다. 그의 대표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기층의 물질문명과 중간의 시장경제, 표층의 자본주의라는 3층 구조를 통해 전체사의 문제의식을 실현한 작품이다.여기서 브로델이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이 독특하다. 보통 자본주의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으로 간주되고 때때로 시장경제와 동의어로 이해된다. 그러나 브로델은 그것을 단기적이고 사건적인 수준에서 인식한다. 자본주의는 명백히 투명한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장경제에 토대를 두지만, 그 행태는 오히려 시장에 역행하는 ‘반시장’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큰 이윤을 취하고 빠져나가는 투자(투기)이자 특정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이다. 16세기를 전후로 한 시대 후추, 설탕 등 사치품...

    2025.12.31 19:23

  • [역사와 현실]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12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12조

    상백 이상백(1904~1966)은 농구 체계를 갖추고 올림픽 위원으로 활동한 체육계 명사로 익숙하다. 그러나 그는 학자로서도 명망이 높은 인물로, 특히 조선사와 관련된 많은 역사학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이상백의 정도전 연구는 연구사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우리가 으레 사용하는 ‘왕자의 난’이란 명칭이 그의 연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내내 이 사건은 ‘무인란’(무인년에 일어난 반란)으로 불리며 정도전이 주도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상백은 1935년 ‘진단학보’에 발표한 <삼봉인물고>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가 정도전의 역모가 아니라 정안군(훗날의 태종)이 일으킨 쿠데타였음을 규명했다.당대 이 논문이 준 충격은 상당했다. 충격의 정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점을 고려해야 한다. 1930년대는 조선이 망한 지 겨우 20여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2025년을 기준으로 보면, 2000년 무렵의 일이었다는 것이니 얼마나 가까운 ...

    2025.12.24 19:58

  • [역사와 현실]환곡, 구휼이라는 이름의 폭정
    환곡, 구휼이라는 이름의 폭정

    1629년 음력 10월26일, 안동부(현 경북 안동시 일대) 백성들은 마치 “뱀 구덩이에 떨어져 허둥대는 형국”(김령, <계암일록>)에 놓여 있었다. 매년 이 시기, 백성들을 힘들게 만드는 환곡 때문이었다. 기근이 들거나 보릿고개를 넘기 힘든 백성들에게 구휼 목적으로 빌려 주었다가 추수기에 이자를 더해 돌려받는 게 환곡(還穀)이지만, 구휼이라는 목적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채권과 채무라는 앙상한 관계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조선 백성들에게 매년 가을은 국가에 대한 채무 이행의 계절이었다.환곡은 말 그대로 ‘돌아와야 하는 곡식’이다. 가을에 창고를 채워야 이듬해 다시 백성들을 구휼할 수 있으니 춘궁기가 오기 전에 환곡은 채워져 있어야 했다. 이 때문에 지방관에게 환곡 관리는 매우 중요한 업무였고, 부실한 환곡 관리는 종종 지방관의 파직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안동 부사가 끓는 물에 덴 사람처럼 환곡을 거두라 독촉한 이유였다. 이런 상황을 이해해도 당시 안동부의 환곡 거두기...

    2025.12.17 20:09

  • [역사와 현실]환갑을 맞는 자세
    환갑을 맞는 자세

    몇년 전부터 가까운 선배들이 하나둘 환갑을 맞더니 어느덧 친구들과 필자도 그 선을 넘고 있다. 선배들이 환갑을 맞았을 때 작은 선물이라도 건넬 생각은 못했다. 평균 기대 수명이 60세에 훨씬 못 미쳤던 시대에 만들어진 풍습이 지금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 자신도 그 시간 앞에 서자 삶의 전환점으로서의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어떤 문제든 자기 문제와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생각하는 모양이다.역사학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얼핏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변화를 그 내용으로 갖는다. 동서양의 앞선 역사학자들은 시간 자체가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 이리저리 말했다. 그들에 따르면 크게 두 유형이다. 순환적 시간과 선형적 시간이다. 순환적 시간은 반복되는 시간이고, 선형적 시간은 머리와 꼬리가 있는 반복되지 않는 시간이다. 두 가지를 절충해서 나선형 시간을 말한 사람도 있다. 단기적으로 순환적인 듯 보...

    2025.12.10 20:11

  • [역사와 현실]변신의 두 원리
    변신의 두 원리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디 람페두사의 베스트셀러 소설 <표범>은 19세기 이탈리아 민족국가 탄생기에 몰락하는 시칠리아 귀족의 이야기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때 낡은 귀족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가문의 수장 돈 파브리초에게 젊은 조카 탄크레디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저들이 공화국을 만들 거예요.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라면 모두 다 바꾸어야 해요.” 이 말은 낡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역설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탄크레디는 자기 말대로 새로운 이탈리아를 위해 싸우는 가리발디 군대에 합류한 뒤 이탈리아 삼색기를 휘감고 귀환한다. 그리고 부와 출세에 대한 야망에 불타 돈 파브리초의 딸 대신 급부상한 갑부의 딸에게 빠져든다. 한때 표범이고 사자였던 귀족이 부르주아라는 자칼이나 하이에나로 변신하는 것이다. 돈 파브리초도 자기 시대의 황혼을 바라보며 탄크레디의 변신을 인정하고 표표히 물러난다. 미국 역사사회학자 이매뉴...

    2025.12.03 22:11

  • [역사와 현실]과거를 지우니 미래가 사라졌다
    과거를 지우니 미래가 사라졌다

    한밤중, 발굴보고서 하나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탄식했다. ‘아, 이거 보존해야 했는데!’ 10여년 전 읽었을 때에는 미처 몰랐던 중요한 지점들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는 1990년대 후반, 아파트 건설을 앞두고 구제 발굴을 한 모 지방 사직단에 대한 기록이었다.지방의 사직단은 원형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은 거의 다 사라졌고, 위치도 잊힌 곳이 많다. 그나마 ‘사직구장’과 같이 지명으로라도 남았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그 의미도, 장소도 잊혔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분명한 문헌 기록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직단은 단의 크기와 높이가 굉장히 중요해서, <국조오례의>와 같은 예서에 변경해서는 안 되는 원칙으로 그 제도가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지방마다 설치한 사직단의 크기는 <국조오례의>에 실려 있지 않다. 위치와 구성에 대한 소략한 내용만 있을 뿐, 단의 크기와 높이를 어떻게 한다는 내용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2025.11.26 20:19

  • 의도적 외면만이 할 수 있는 일

    1778년 음력 9월의 기록에 따르면, 선산 지역의 작황은 말이 아니었다. 봄에 빌린 환곡은 고사하고, 전세(田稅) 납부만으로도 겨울 나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절망은 수확에 대한 기대에 반비례하는 법이니, 민심은 흉흉해졌고 백성들은 겨울 초입부터 허리끈을 졸라매야 했다. 다행히 이 와중에 새로 부임하는 경상도 관찰사가 선산을 지나 성주로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관찰사(觀察使)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관찰사가 새로 부임하면 그 지역 작황과 민심을 살피는 일은 너무 당연했다. 내년 보리 수확기까지 내리 굶어야 하는 백성들 입장에서는 관찰사의 눈이 자신들에게 머물기만 해도 겨울 목숨 하나 더 얻을 방도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만한 상황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타운홀 미팅까지는 아니더라도, 백성을 살피는 눈만 있으면 선산부 처지는 충분히 눈에 들어올 정도였기 때문이다.특히 새로 부임하는 경상도 관찰사 이재간은 이조참판과 호조참판을 지낸 노련한 관료였다. 인사와 재정 실...

    2025.11.19 21:45

  • [역사와 현실]세금 내는 니콜라
    세금 내는 니콜라

    최근 프랑스에서 연이어 총리가 바뀌고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그 가운데 ‘세금 내는 니콜라(Nicolas paie)’라는 가상의 인물이 유명해졌다. 고물가와 높은 세금에 시달리지만, 긴축 재정으로 인해 복지 혜택이 축소되는 중산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프랑스 정부 정책이 어쩔 수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국가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115%이다. 2010년대 유럽 재정위기를 겪은 국가들 수준이다. 부채 증가의 원인은 연금 지급 대상의 빠른 증가다. 니콜라는 자신의 미래 연금을 위해 세금을 내지만, 그의 미래 복지는 불확실하고 현재 그가 내는 세금은 큰 부담이다. 프랑스의 현 상황은 많은 ‘선진국’도 직면한 것이고, 한국도 조만간 만나게 될 위험 요인이다.프랑스의 현 상황은 무엇보다 사회구조 변화가 근본 원인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후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고 당시 노년층 인구는 적었다. 또 1950년부터 경제성장과 호황이 장기간 이어졌다. 그 위에...

    2025.11.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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