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전후로 조선은 외세와 거칠게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가 그것이다. 이제 조선은 외세에 어떻게 대응할지 입장을 정해야 했다. 이에 조선에서는 사회 계층에 따라 몇가지 입장이 등장했다. 이 입장들은 이후 정치적, 국제적 상황 변동에 따라 착종되고 변주되면서 수십년에 걸쳐 이어졌다.처음 제기된 입장은 ‘위정척사’와 ‘개화’였다. 위정척사는 전통적 지식인들의 주장이었다. 일본의 강요로 1876년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조선 조정이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최익현 등은 일본이 서양과 다를 바 없고, 개항을 하면 조선의 경제가 무너지고 윤리관이 파괴된다고 경고했다. 지금 봐도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위정척사는 흔히 수구와 동일시되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사실과 다르다. 그것은 그 시대 조선 지식인들의 정체성이자 행동 원칙이었다. 이 안에도 온건파와 급진파가 있었다. 전자는 ‘조선의 정신은 지키고, 서양의 기술만 받아들...
11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