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들이 말한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어딜 가나 꽤나 건강한 편이라 여겼던 나는 올여름 느닷없이 이석증을 얻었다.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몹시 괴로운 시기는 아닌데 뇌가 긴장하고 있는 것도 스트레스 반응일까요? 그 무엇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지만 앉으나 서나 세상이 빙빙 도는 공포에 절여진 나는 정확히 알고 싶었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간관계, 수면, 영양, 일 모두 문제겠지만 그중에서도 무엇이 특히 문제인가요. 원인을 모르니 치유도 아득했다. 이름을 붙이고 원인을 박멸하여 100%의 건강한 상태가 되고 싶었으나 인간의 몸이란 애초에 그럴 수가 없으며 언제나 크고 작은 질병과 장애가 달라붙어 있다는 당연한 사실만 다시 각인했다.

질병이란 원래 해명할 수 없는 것일까. 정영수의 미려한 소설 <일몰을 걷는 일>(릿터 35호)에서 우울증으로 시도 때도 없이 왈칵 눈물을 쏟는 ‘걸어다니는 눈물주머니’가 된 남자는 ‘왜’라는 질문 앞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가 애처롭다고 생각하는 세상 모든 존재가 울지 않고 있는데, 자신만 울고 있는 까닭을 그로서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리상담도 받아보고 유년 시절도 추적해보고 친구에게 고민도 털어놓아보고 연락이 끊긴 동창에게 긴 메일도 써보지만 속 시원히 밝혀지는 일은 없다.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증상을 얼마간 민망해하거나 우스워하면서, 혹시 자기연민이나 과잉된 자의식은 없는지 의심하면서, 남자는 아픔을 명확한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 채 오래 헤맨다.

아픔이란 원래 언어와 호환되지 않는 것일까. 말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해 말하고자 애쓴 아름다운 기록인 김지승의 에세이 <짐승일기>(난다, 2022)는 그 패러독스에서 출발한다. 항암 후유증으로 인한 갱년기 증상일 뿐 갱년기가 아니라는 의사들의 말 앞에서 그나마 나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아픔의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막막함. 그러나 전 연인, 어머니, 동료, 처음 보는 남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비롯해 아픈 몸을 둘러싼 무수한 관계들를 관찰하고 확인하며 아픔의 언어를 새롭게 발굴한다. “나는 거짓말이고, 어쩌다 남은 것들이고,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의 이웃이므로 나는 나에 대해 말할 수 없음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살려고 애쓴 일들이 도무지 나를 살게 하지 않아 고통스러웠다가도, 방 청소를 하다가, 약속이 취소되어 다행스러워하다가, 무언가를 쓰려 책상 앞에 앉았다가, 아픈 몸에 대해 말하다가, 나는 문득 알게 된다. “나는 이제 겨우 내 몸에 도착한 상태다.”

‘치유’의 영어 단어 ‘cure’에는 “고치다, 교정하다, 어떤 종류의 악을 제거한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어떠한 질병과 장애도 ‘악’은 아니다. 장애학자 김은정이 말했듯 치유는 무언가를 가능하게도 하지만 불가능하게도 한다. 질병과 장애를 전문가의 개입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결함으로 여기며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그렇다면 아프고 늙고 의존하는 몸을 치유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몸들이 말하는 언어가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언어가 생기면 세계가 만들어진다. 아픔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완전하게 치유하지 못하더라도 아픈 몸과 대화하고 끊임없이 살아있는 관계 맺는 것. 이것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아니라면 무얼까. 그리고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있는 미적 능력이 아니라면 무얼까. 무엇보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면 또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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