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지난번 칼럼에 ‘수○자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수○자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 용어가 개념을 고착화하고 확대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둘째, 수학 교과 내용을 줄이고 쉬운 문제만 출제하는 것으로 학습 부진아와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수학을 교육하는 환경임을 명심하자. 셋째, 수학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과목이다 등이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내 글 내용에 동감하고 응원하는 반응을 보여준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동의하지 않거나 오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의 글 내용 세 가지만 들면 다음과 같다. 1. 수학에서 학습 부진아가 많은 것은 수학이 원래 어려워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인가? 2. 수학은 어렵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학교교육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3. 원리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고 인위적으로 너무 꼰 문제들은 배제해야 한다.

나는 3번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2번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수학은 원래 어려운 과목이다. 학교 수학에서 쉬운 내용 위주로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결국 수학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학생이 쉬운 수학만 공부했다면 그 학생은 언젠가 너무 늦은 때에 수학의 어려움 때문에 절망할지 모른다.

수학 싫어하는 핵심은 치열한 경쟁

이제 ‘학습 부진아가 많은 것은 수학이 원래 어렵기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질문을 잘 보면 그 배경에는 ‘사람들은 어려운 것은 좋아하지 않거나 포기하기 쉽다’는 것이 가정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당연히 맞는 말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수학을 싫어하거나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일부 우수한 학생뿐이고, 평균적인 학생들, 특히 수학에 재능이 없는 학생들은 어려운 수학문제를 내면 당연히 수학을 싫어하게 된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수학을 싫어하게 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 경쟁에서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치열한 경쟁이지 수학의 어려움이 아니다.

나는 심지어는 반대로 ‘평균적인 사람들도 어려운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평균적인 학생들이 어려운 수학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요? 그래도 그건 아니죠” 하는 이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하지만 내 말을 좀 들어 보기 바란다. 우선 내 고등학교 동기들 이야기를 해 보자.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는 학교에서 매달 실력고사를 보았는데 그때 수학의 전교 평균이 10점 내외밖에 되지 않았고, 수학 평균이 40점이 넘으면 서울대 합격권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난 우리 동기들 중 상당수가 자기는 수학을 좋아하고 소질도 좀 있는 학생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편 요즘에는 한 반에 80점이 넘는 학생들이 반이 넘는 수학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왜 수학이 싫다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을까? 그것은 틀리는 아픔이 너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어렵지만 보통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은 수학만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스포츠인 축구의 예를 떠올려 보자. 축구는 친해지기 전까지는 아주 어려운 스포츠이다. 중계방송을 볼 때 선수들의 플레이를 자세히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점수가 잘 나지 않아 지루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어려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축구가 역설적으로 지루하고 어려운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어쩌다 골을 넣었을 때 느끼는 짜릿한 희열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틀린 아픔보다, 맞는 기쁨이 더 크게

골프라는 스포츠도 이와 비슷하다.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이 골프에 빠지는 이유는 그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노력해도 잘 안 되고 종종 절망에 빠지면서도 결국에는 골프를 좋아하게 되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또한 어쩌다 한번 공을 잘 쳤을 때의 짜릿함도 잊지 못한다. 바둑의 경우에도 그것이 배우기도 어렵고 고수가 되기도 어려운 게임이지만 즐기는 사람들이 오목이나 장기보다 더 많다.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풀었을 때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이어 또 한번 나의 표어를 소개한다. “틀리는 아픔보다, 맞히는 기쁨이 더 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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