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을 거부한다

남경아 <50플러스세대> 저자

너무 많은 글과 말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 굳이 말을 더 보태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생각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뭐라도 한마디씩 뱉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남경아 <50플러스세대> 저자

남경아 <50플러스세대> 저자

10월30일 일요일 오전 6시. 단톡방에서 첫 소식을 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취하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다. 연거푸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아들이 종종 외국인 친구들과 이태원에서 노는 걸 알기에 이미 심장은 쿵쾅거리고 맥박도 빨라졌다. 아들에게 ‘자고 있었어’라는 답이 올 때까지 30여분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태를 파악한 아들도 친구들은 괜찮은지 걱정하며 참담하다고 했다. 그날 대한민국의 아침은 전 국민 안부 묻기로 꽤나 분주했다. 20대 자녀를 둔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노부모들도 머리 희끗한 중장년 자녀와 가족을 챙기며 ‘별일 없다, 다행이다’라는 말이 오갔으리라. 그런데 과연 우리는 별일이 없는가.

친구 J는 아들이 군 복무 중이어서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날 외박을 내고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 시간 사람이 너무 많아 옆 골목으로 들어섰다고 해 같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한 아들이 너무 걱정돼 친구는 상담 신청할 것을 권했고 아들도 그러겠다고 했지만, 평소와 너무 다른 아들 모습에 친구는 불안하다고 한다. 데자뷔처럼 여러 단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8년 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수학여행 가기 이틀 전 세월호 사고가 났다. 아들의 수학여행도 취소되었다. 문득 자다 말고 소식을 접한 내 아들은 그 현장에 있었던 친구의 아들보다는 충격이 덜할까 의문이 들었다. 모르겠다. 하지만, 현장에 있었건 없었건 충격이 크건 작건 단순히 경중을 따지고 비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거 같다. 연거푸 동년배 친구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지켜본 이 젊은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온 국민이 그렇듯 나도 눈물과 허탈과 분노로 애써 뉴스를 외면하려 했지만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국가 시스템 부재, 불통 리더십 등 총체적 난국 속에서 온갖 추측과 해석이 난무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상식 이하의 말과 상황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덥지 못한 국가 체계에서, 무능한 정치체제하에서, 불확실성이 남발되는 전대미문의 시간 속에서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당장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평안한 것이 아닌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내 일상도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데.

문득 오래전 일본에 연수 갔을 때, 일본 NPO(비영리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으며 일본 사람들이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는데, 위기의 순간에 나를, 우리 가족을 구해준 건 다름 아닌 이웃이라는 것이다. 국가도 지자체도 아니고 바로 이웃과 공동체, 시민사회만이 자신을 지켜주었던 그 경험 덕분에 일본 시민사회는 급속히 성장했다는 것이다. 혹시 지금 우리 국가가 이런 걸 기대한다면, 어림없다. 우리는 든든한 국가, 믿음직한 정부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시민사회 공동체를 원한다. 시민사회가 성장하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국가 없는 시민사회를 바라는 건 절대 아니다. 각자도생을 거부한다. 제발 우리를 뼈저리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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