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와 ‘용기’

백학순 김대중학술원장

요새 우리들의 삶이 많이 움츠러들어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어떤 민족보다도 흥이 많은 민족인데, 지금 흥은 사라지고 근심 걱정만 남아 있으니 사람이 쪼그라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과 천지의 기운이 만나서 흥을 일으키고, 사람이 흥겨우면 근심으로 든 병도 낫는다는데, 사람들이 흥을 잃은 요즘 나라와 민족도 나아갈 방향을 잃고 어지러운 세상이 됐다.

백학순 김대중학술원장

백학순 김대중학술원장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나 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부모형제와 작별인사도 못하고 비명횡사했다. 또 고금리와 고물가 등으로 부동산, 주식 등 자산의 거품이 붕괴하고 또 고환율과 세계경제의 불황의 심화로 우리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람들은 ‘국가가 어디 있는지’ ‘정부가 과연 국민의 안전과 민생에 관심이나 있는지’ 묻고 있으나, 대답이 없다.

보통의 대통령과 정부라면,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여 그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모양새라도 갖출 텐데, 우리 대통령과 정부가 하는 행동은 정반대다. 고등학생이 그린 대통령 풍자만화 비난을 통한 ‘표현의 자유’ 탄압, 그간의 외교참사에 이어 이번에는 특정 방송사 기자의 해외 순방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또 유례없이 ‘풀’기자단의 취재가 불허된 상황에서 한·미 및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가 통째로 실종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8일에 북한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의 다탄두 대륙간탄도탄(ICBM) ‘화성-17형’의 실험발사에 성공하자 한·미·일 3국은 즉각 F35-A 스텔스 전투기, B-1B 전략 폭격기 등을 출동시켜 북한과 ‘핵전쟁 불사’로 대응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가 한·미 양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에 한·미 양국은 문제해결을 위해 그만큼 더 치열하게 협상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또 한·미 양국이 핵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는 대북 전략자산 전개를 불가피하게 선택했다 하더라도, 정부로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전쟁위협을 낮추는 노력을 몇 배 더 기울였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 정부가 핵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는 한 축이 되어 있으니,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요즘과 같은 난세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의 정체성과 이익은 무엇인지 엄중하게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통합과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인가? 우리 사회를 ‘우리 대 그들’로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또 전쟁불사 위협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키워가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어떻게 우리 사회가 그들의 그러한 행동을 허용하고 있는가?

그다음,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과 행동에 대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양심’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공공선의 회복을 위해 ‘용기’를 내어 그것들을 바로잡도록 ‘행동’해야 할 것이다. ‘양심’으로 잘잘못을 가렸다고 해도, 고통과 위험, 불확실성에 과감하게 맞서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면 별 의미가 없다. 지금과 같은 난세에서는 국가와 집권세력의 힘이 무절제하게 사용되고 주권자인 국민이 ‘을’의 위치로 떨어져 있어 권력자와 정부의 잘못을 지적할 ‘용기’를 내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독립, 민주주의와 인권, 통일과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수많은 조상들의 ‘용기’를 기억한다. 가장 최근의 인물로는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한다. 2000년 김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노벨위원회는 반세기 동안의 남북 간의 뿌리 깊은 적대를 깨뜨리고, 세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분단선을 넘어 협력의 손길을 뻗친 김대중 대통령의 ‘용기’를 칭송했다. 김 대통령은 “진정한 용기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 “용기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의 ‘용기’는 ‘행동하는 양심’의 맥락에서 더욱 실천적인 용기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우리 대통령과 정부로 하여금 주권자인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 행복을 중시하고, 국내 정치에서의 통합과 대외정치에서 평화를 위한 노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옳은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대통령도 살고, 정부도 살고, 우리 국민도 모두 사는 길은 없을까?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용기’를 내어 ‘행동’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할 때 우리 민족의 타고난 흥과 국운을 되찾는 길이 열릴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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