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한 한국 경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촬영된 동영상 클립들을 보면, 참사는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몇 시간 전부터 신고 전화가 이어졌고, 질서 있게 군중을 해산시킬 수 있는 ‘골든 타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방관했고, 감당할 수 없을 수준으로 군중의 밀집도가 높아지면서 순식간에 참사가 일어났다. 이태원 희생자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는 ‘제2의 세월호 참사’이다. 안전과 관련된 참사뿐만이 아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경제적 참사도 발생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1997년 경제위기를 겪었고,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경험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탄소중립 시대의 위기에 우리 정부는 사실상 두 손을 놓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암울하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2018년 기준으로 발전(전환) 부문과 산업 부문이 우리나라 탄소 순배출량의 약 39%와 38%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발전 수요의 약 53%가 산업용이므로, 산업 부문의 직간접적 탄소배출량은 전체의 58%를 상회한다. 산업 부문에서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6개 업종이 전체 산업 배출량의 79%를 차지하고 있다. 또 이들 6개 업종에 자동차, 조선, 기계, 전기전자 업종을 포함하면, 이들의 탄소배출량은 전체 산업의 직간접적 배출량의 83% 이상을 차지한다.

한마디로, 우리 주력산업들이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다. 이는 제조업이 우리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6%로 매우 높고, 주력 제조업들이 1970년대 이후에 형성된 중화학공업 중심이기 때문이다. 탄소 1㎏을 사용해 생산하는 부가가치를 ‘탄소생산성’이라고 부르는데, 중화학공업 산업은 탄소생산성이 매우 낮은 산업이다. 따라서 탄소중립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탄소생산성이 높은 산업구조로 바꾸는 ‘산업전환’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에 관한 국내의 논의와 관심은 주로 발전 부문에 집중되어 있다. 발전 부문에서 재생에너지 비중과 원전 비중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며, 녹색분류체계상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원전 발전 원료와 폐기물 처리 시설 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물론 중요한 이슈이다.

그러나 발전 부문의 이런 문제보다도 산업 부문의 탄소배출량을 2050년까지 2018년의 20%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이 더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정부는 산업전환이 어렵다고, 기존 중화학공업 생산 공정에서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개발과 이를 위한 R&D 지원을 차선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정책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이 가장 많은 철강산업의 경우에 2030년과 2050년 사이에 수소환원제철 공정이 상용화되어서 탄소배출 자체를 없앨 수 있다는 가정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하고 있다. 그러나 수소환원제철이 실제로 상용화될 수 있고 상용화되더라도 2050년 이전에 상용화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예측을 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우리 정부의 탄소중립 대책은 이런 불확실한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의 희망대로 수소환원제철이 상용화된다고 하더라도, 한국 철강산업은 가격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에 그린 수소가 대량으로 필요한데, 국내에서 이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기에 80% 정도를 수입한다고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가벼운 수소를 운반하기 위해서는 특수선 제작 등 상당한 비용이 든다. 따라서 그린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국가에 수소환원제철소를 짓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우리 제철산업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기존의 중화학 공업이 사양화되고, 최신 공장들은 탄소중립이나 RE100 불이행에 따른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국외로 이전하기 시작하면, 동남권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의 파탄과 대량실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경제와 사회는 1997년 경제위기 당시보다 더 극심한 침체에 더 오랫동안 빠질 수 있으며, 이 경우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경제적·사회적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전환을 준비하고 시작해야만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목전의 경제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탄소중립과 RE100을 달성할 수 있는 산업전환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 우리는 돌이키기 어려운 경제적 참사를 피할 수 없다. 정권 쟁탈에 매몰된 정쟁이 아니라 탄소중립과 산업전환이 현재 우리 정치의 주요 의제가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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