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보도를 비롯한 재난 수습 지침서는 재난으로 해체된 공동체 회복과정에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잘 구별해서 다루어야 하고, 책임 추궁이 원인 규명에 앞서지 말아야 한다고 깨우친다. 책임 추궁이 선행할 경우, ‘회피 전략’이 횡행하여 원인 규명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 두 가지를 분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책임 있는 자들의 ‘의도적 회피’가 원인 규명을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책임 추궁을 단호하게 앞세워야 할 때도 있다.
이상민 장관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이태원 참사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으로서 이런 충격적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버티고 있는 모습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심각한 것은, 이상민 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이 장관 자신이 앞장서 ‘회피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방어막을 치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재난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법적 무죄 증명을 마련하는 데만 골몰하였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이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
경찰 지휘부도 이 장관과 마찬가지로 책임 회피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특수 수사본부에 의해 피의자로 입건되어 있으나 대기발령, 직위 해제와 같은 인사조처는 없다. 경찰청은 특별감찰팀이 이태원 참사 관련 내부 감찰을 진행 중이라 하는데 이 팀이 자신들을 지휘, 감독하는 경찰청장에 대해 제대로 감찰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같이 의심의 눈총을 보내고 있다. ‘회피 전략’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그대로 둔 상황에서 원인 규명이 제대로 될 것이라 믿는 이는 별로 없다.
‘회피 전략’의 정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그는 재난 피해자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책임을 물어야 할 이 장관을 감싸기만 했고 수사 선행원칙만 되풀이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태도가 10·29 이태원 참사 수습의 기조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합의했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강경파 윤핵관들에 의해 조리돌림을 당했던 일도, 더불어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이유로 국민의힘이 국정조사를 거부하려 하는 것도 그런 대통령의 기조가 반영된 게 분명하다. 윤핵관 가운데 한 사람은 ‘국정조사는 애초 합의해서 안 될 사안이었다’라고 하여 유가족의 가슴을 후벼팠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에 대해 내뱉은 저주에 가까운 막말 역시 이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략에서 나왔다. 또 다른 윤핵관은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출범에 대해 색깔론을 비롯한 온갖 혐오의 언술을 동원하여 재난 피해자의 호소와 자발적 결사를 매도하였다. 그가 쓴 혐오와 배제의 표현은 말을 옮기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 전략의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국가권력과 맞서면서 희생자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자기 몸조차 추스르기 힘든 상황에서 ‘회피 전략’에 대항해서 안쓰럽게 외치고 있다. 권력의 엄청난 비대칭 상황에서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확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들이 하려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억울한 죽음의 원인 규명, 2차 가해 저지, 재발 방지를 위한 행동 등이다. 그리고 정부에 대해서는 국정조사, 성역 없는 수사, 책임자 처벌, 유가족 소통 공간, 희생자 추모 공간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마땅한 바람이며 권리다.
그런데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힘이 없다. 그들이 맞서고 있는 상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어마어마한 권력의 덩어리다. 재난 피해자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지와 응원이 절실한 이유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들을 돕는 일을 정쟁이라 매도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이 재난의 정쟁화에 불을 지르고 있다. 거대한 권력체가 책임 회피 전략으로 원인 규명을 늦추거나 왜곡시키고 재난 피해자들을 고립시키려고 한다.
재난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가 간절하다. 이분들의 소망은 궁극적으로 가족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분들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억하고 함께 치유하고 함께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연대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막강 권력의 ‘회피 전략’과 맞서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손을 잡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