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잴 수 없는 것

고영직 문학평론가

“100세 시대에 20대 초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을 우려먹기가 불가능합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와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이 대담한 책 <최재천의 공부>에 나오는 구절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내가 몰랐던 지식을 탐구하면서 지식의 영토를 더욱 넓히라는 말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우리나라에서 공부 하면 내로라하는 석학인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공부법은 말 그대로 진짜 ‘빡세게’ 하라는 주문이었다. 독서는 빡세게 해야 하고, 나의 생각이 자리 잡는 글쓰기에 집중해야 하며,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진짜 공부를 하라는 식이다. 데드라인 일주일 전에 원고를 마감한다는 대목에서 절로 탄성이 나온다. 천성이 게으른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넘사벽’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돌아보며, 다시 공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최재천·안희경 두 분이 제안한 것처럼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공부는 무엇일지 숙고하게 된다. 이 화두를 잘 푼다면 앞으로의 내 50+ 인생은 조금은 더 재미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50대 중반에 하는 공부는 입신출세를 위한 공부와는 판이할 것이다. 2023년이면 이른바 문화백수 노릇 15년차가 되는데 어떻게 가르치지 않아서 크게 배울 수 있고, 배운지 모르고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도 아니다. 내 서가에는 자기계발 서적은 단 한 권도 꽂혀 있지 않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한 셈이랄까. 오히려 이번 생은 망했으니, 재미있게 춤추고 놀자는 태도가 더 창의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왼쪽 가슴에 아직 남아 있는 지적 호기심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미국의 인문학자 브라이언 보이드는 “예술 작품은 정신의 운동장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배운 알량한 법 지식 등으로 평생을 우려먹으며 정신의 운동장이 한없이 쪼그라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정치판이 그렇다. 사람의 업데이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꾸준히 축적된 힘에서 어느 순간 질적 도약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의 말과 글은 참혹하다. 사회적 흉기에 가깝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절규하는 10·29 이태원 참사 유족을 두고, 일부 정치인 및 유튜버들이 보여준 언행은 다수 시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공감 능력도 소통 능력도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자.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공부, 어떻게 가능한가.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적절한 말 걸기를 해야 한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고 주관적이다. 고통에 등급(等級) 따위는 없다. ‘고독의 시인’이었던 에밀리 디킨슨이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이라고 한 표현에서 ‘고독’이라는 말을 ‘고통’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통의 철저한 개별성 때문이다. 고통에 처한 누군가의 ‘곁’에서 그들을 더 섬세히 이해하고자 애쓰는 유구한 문화 형식이 문학(예술)이다.

소위 위정자들이여, 세밑을 맞아 예술·인문 책을 찾아 읽는 시늉이라도 하며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공부를 생각하자. 최소한 작심삼일이라도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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