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그러진 초상

이영경 문화부 차장

해마다 의례적으로 하는 일들이 있다. 출판 담당 기자에겐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일이 그렇다. 매주 토요일자에 발행되는 ‘책과 삶’면에 소개한 책들 가운데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시 읽어보면 좋을 책들을 문화부 기자들과 함께 골랐다. 2022년 ‘경향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책 10권’의 목록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책들을 훑다보니 현재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좌표가 어디인지 명확해졌다. 기후변화는 돌이킬 수 없이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노골적 혐오와 암묵적 편향이 빚어내는 차별의 벽도 여전히 공고했다. 책들은 현실의 위협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다.

이영경 문화부 차장

이영경 문화부 차장

해마다 독서율이 곤두박질치고, 책보다 영상이 친숙한 시대지만 ‘그게 돈이 되는기가’만 묻는 세상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책을 낸 이들이 있다. 저자와 출판사가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책을 쓰고 낸다면, 나무가 잘 자라도록 물과 비료를 주는 심정으로 기사를 쓴다.

사실 도움을 받은 건 내 쪽이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라는 장석주 시인의 말처럼, 애써서 읽고 쓴 책과 기사 덕분에 나의 우주는 더 깊고 넓어졌다. 그중 아쉽게도 지면에 소개하지 못했거나 10권 안에 들지 못한 책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깻잎 투쟁기>는 전임 출판 담당 김지혜 기자가 “소개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꼽은 책이다. 아쉬울 만했다. 깻잎·고추·김 등 우리 밥상에 오르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다룬 책이다. 이주노동자를 지원하고 연구해온 우춘희씨는 그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치열하게 기록했다. 열악한 주거시설과 임금체불, 저임금,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 문제 등 그들이 처한 현실은 참혹했다. 오늘 밥상에 오른 깻잎은 이주노동자가 하루 종일 딴 1만5000장의 깻잎 중 하나다.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느라 병원에 갈 시간조차 없는데도 내국인 보험 가입자의 평균을 낸다. 우리 밥상과 사회는 이들의 저임금과 인권침해로 유지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정당한 자리를 내어주는 일은 당연하고 시급하다.

덴마크로 입양된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의 <그 여자는 화가 난다>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지난 7월 책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시인의 목소리는 강렬했다. 딸이라는 이유로 입양을 보낸 가족, 국가 간 입양 사업으로 돈을 버는 입양단체와 국가, 미혼모라는 이유로 입양을 권유하는 제도 등 모든 것에 화를 낸다. 책에 담긴 다성적 목소리는 수많은 국가 간 입양인들의 아픔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백인’으로 여기며 자란 시인은 국가 간 입양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나서 양모와 거리를 나란히 걷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걸을 때면, 누구라도 여자가 입양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사람 간의 힘의 불균형은 한눈에 보인다.”

랑그바드의 글쓰기는 개인적 체험을 사회구조적 맥락 속에 위치시켜 글을 쓰는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와도 맞닿아 있다. 개인의 고통부터 입양산업, 성차별과 인종차별 등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아우른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에 수출된 한국의 아이들로 그려진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이 두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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