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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하는 도시의 덕목
각국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2018년 이후 10위권 밖에 위치해 있다. 비교 단위를 도시로 확대하면 순위는 더 밀려난다. 천의영 경기대 교수가 저서 <메가시티 네이션 한국>에서 GDP와 광원(불빛) 기반 지역총생산(LRP)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14위 대한민국 위쪽으로 비국가 4곳이 있다. 보스턴~워싱턴을 잇는 ‘보스워시’, 시카고 일대 ‘그레이트 레이크’, ‘파리~암스테르담~뮌헨’, ‘양쯔강 삼각주’ 등 미국·유럽·중국의 메가리전(megaregion)들이다. 인구 1000만명 이상 메가시티(megacity)가 주변 동질성을 띤 도시들과 기능적으로 연계되며 집적된 지역이다.지구인의 60%, 한국인의 90%가 도시에 산다. 특히 세계 인구 13%는 34개 메가시티 시민이다. 2020년대 후반이면 지구 면적 2%에 인구 62%가 몰리고, 2030년이면 메가시티 10개가 새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과 자원이 집약되며 규모의... -
진보정당 “다시 시작할 용기”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이 그해 5월31일 등원했다. 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진보투사들이 어색하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민 앞에 섰다. 단병호 의원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의원이 한두 명만 있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뼈에 사무쳤다”며 울먹였다. 권영길·심상정·천영세 의원의 눈시울도 붉어졌다.보수 편향의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국회 입성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민주노조운동과 사회운동의 산물이자 역동적인 한국 민주주의 그 자체로 평가됐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 하나는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열망이 투영된 결과였다. 당시 민주노동당에는 열정이 가득 찼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당사에 보낸 축하 화환이 그 기대감을 상징했다. 당원들은 “집권도 머지않았다”며 가슴 벅차했다.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권영길·단병호·천영세 전 의원이 지난 4월5일 5선에 도전한 심상정 의원 사무실을 지지 방문했다. “세상을 바꾸자”며 20년 전 제도권에 ... -
국교위, 체육 단독교과 허하라
알리바바그룹 창립자 마윈은 2017년 과학 기술이 지배할 미래에 살아가기 위해 자녀들에게 지금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역설했다.“교육은 큰 도전을 받고 있다. 교육이 달라지지 않으면 30년 후 우리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현재 교육은 200년 전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그렇게 가르쳐서는 우리 아이들이 더 똑똑해지는 기계와 경쟁할 수 없다. 기계가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믿음, 독립적 사고, 팀워크, 타인에 대한 배려 등 소프트한 가치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스포츠, 음악, 미술이다.”과거 책이 없을 때, 미디어가 부족할 때, 배울 곳도 지도할 사람도 없을 때 우리는 학교에서 교과서로 거의 모든 지식을 배웠다. 그게 국어, 수학, 과학, 역사, 언어 등으로 명명된 교과들이다. 당시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역할이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보가 넘치고 넘친다. 오프라인 교육 콘텐츠가 과할 정도로 풍부하다. 인터... -
숫자를 감추는 말
어떤 말은 숫자를 감춘다. ‘냉전’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이전의 세계대전 같은 ‘열전’과 달리 마치 이 기간 동안만은 전쟁 사망자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강대국 사이에 전면전이 없었을 뿐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폴 토머스 체임벌린에 따르면 2차 대전 이후 1990년까지 한국과 베트남 전쟁 등에서 2000만명 이상이 죽었다.예산 ‘삭감’이라는 말도 그렇다. 예산의 합리적 재조정처럼 포장하지만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달려 있다. 33년 만에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되면서 수많은 연구원, 대학원생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왜 그런 숫자는 보이지 않을까. 냉전 시기 사망자는 대부분 아시아 지역에서 나왔다. ‘장기 평화’를 노래하던 서구 강대국들 눈에 죽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까닭이다. 예산 삭감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대체로 약자다. 공적 지출은 상당 부분 개인 노력이나 시장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성폭력 ... -
케이블카 확대 약속서 생략된 것
2014년 9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선 여러 차례에 걸쳐 다수 정부 부처와 지자체 관계 공무원들이 모이는 태스크포스(TF) 회의가 열렸다. 문체부와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 환경부, 국토교통부에 서울시, 강원 양양군 공무원 등 참가자 면면만 보면 다수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국책사업에 대한 회의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 거창한 회의는 이른바 국정농단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주도로 열린 ‘친환경 케이블카 확충’ 목적의 회의였다. 회의 내용을 담은 문서들을 보면 관계 부처와 지자체 공무원들은 강원 양양군과 서울 남산에 ‘친환경 케이블카’를 만들기 위해 전국 실태와 희망 지역 조사를 실시하고, 설치에 장애물이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했다.이처럼 10년 전 다수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힘을 모아 추진하면서 국정농단의 산물이 될 뻔했던 설악산 케이블카와 남산 곤돌라 사업은 무산됐다가 우여곡절을 거쳐 최근 다시 부활했다. 두... -
‘후쿠시마 오염수’ 없는 총선
조용하다. 한 달도 안 남은 총선에서 온갖 이슈가 터져 나오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한 얘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처음 바다에 방류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당시에는 이 문제가 올해 총선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일례로 첫 오염수 방류를 한 주 앞둔 시점에 한 일본 언론이 “한국 정부와 여당 내에서 일본 오염수 방류가 불가피하다면 총선에 악영향이 적도록 방류를 빨리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당시 한국 정부 당국자는 “일본 측에 조기 방류를 요청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해당 보도를 적극 부인했다. 지난해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야당과 ‘과학적인 대응’을 주장하는 여당의 대립 전선은 한국의 삼복더위보다 뜨거웠다.이랬던 상황이 무색하게도 지금 국내 정치권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얘기를 꺼내는 경우를 찾기는 어렵다. 이유가 뭘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이 생기는 한국 정치 풍토 속에... -
“혁명적” 공천, 서대문갑
서울 서대문갑 지역구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의 20년간 대결로 유명하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두 사람은 16대부터 21대 총선까지 6차례 맞붙었다. 우 의원이 4번, 이 구청장이 2번 이겼다.이번 총선에서는 두 맞수의 정면승부를 볼 수 없다. 우 의원은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 구청장은 기초단체장으로 변신했다. 터줏대감이 물러나면서 서대문갑은 무주공산이 됐다. 여야 공천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렸다.민주당은 놀라운 방식으로 서대문갑 공천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준과 절차를 수시로 바꿨다. 민주당 안에서조차 “이런 공천은 난생처음”이라는 한탄이 나온다.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2월23일 서대문갑을 청년전략특구로 지정했다. 안규백 전략공관위원장은 대국민 오디션을 하겠다며 ‘슈퍼스타 K 방식’을 언급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국민투표를 통해 후보를 압축하는 방식으로 이해됐다.지난 2월26일 발표된 기준은 예상과 ... -
푸바오의 마음
푸바오가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분홍색 살덩어리였던 탄생의 순간부터 100㎏가 넘는 건장한 판다가 되기까지 전 국민이 푸바오를 지켜봤다. 푸공주, 용인 푸씨 등 다양한 애칭으로 불리며 ‘국민 판다’가 됐다. 이번엔 푸바오 때문에 눈물바람이다. 4월 중국 반환을 앞두고 비공개 상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푸덕이’들은 푸바오로부터 “위로와 감동을 얻었다”며 이별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푸바오는 곧 중국에 송환된다. 이것은 사람의 관점이다. 푸바오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나고 자란 집을 떠나 정든 사육사와도 이별한 채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떠나는 것이다. 생이별, 낯선 곳으로의 이주다. 사람의 마음이 아닌 ‘푸바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긴 이동을 거쳐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푸바오의 마음은 어떨까. 쓰촨성은 ‘판다의 고향’으로 불리지만, 한국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푸바오에겐 생면부지의 땅이다.로렐 브레이트먼의 <우린 모두 마음이 있어>(... -
이강인, 더 아파야 한다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에게 지난 2주는 지옥이었을 게다. 팬들의 비판이 상상외로 무서웠다. 이강인이 아시안컵 4강전 전날 손흥민(토트넘)과 몸싸움을 벌인 게 화근이 됐다. 탁구를 자제하고 경기에 집중하라고 말한 손흥민에게 이강인은 거칠게 대들었다. 팬들의 분노가 거세졌고, 이강인은 지난 19일 런던에서 손흥민을 만나 용서를 구했다. 손흥민도 “이강인을 용서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이강인이 대면사과했고 손흥민도 용서를 구했지만, 팬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 것 같지 않다. 이강인의 행동을 하극상으로 간주하는 팬들도 많다. “우리는 용서할 수 없다” “축구계에서 퇴출하라” “병역 혜택을 박탈하라” “국가대표로 영원히 뽑지 말자”는 분노가 존재한다.이강인은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뛰어난 재간이 팬들을 매료시켰다. 한국 축구의 약점인 테크니션 부족을 해결할 재목으로 꼽혔다. 그는 10세 때인 2011년 스페인 발렌시아 유소년팀으로 갔다. 스페인은 독일, 잉글... -
집중하는 AI, 흩어지는 인간
‘Attention is all you need.’(당신이 필요한 건 집중이에요.)이 한 줄의 문장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챗GPT 같은 놀라운 인공지능들 말이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뜯어보면 트랜스포머(Transformer)라는 구조로 돼 있고 그 핵심은 어텐션(Attention·집중/주의)이라는 기술이다. 비틀스의 노래 제목을 패러디한 이 문장은 이 기술을 최초로 발표한 구글의 논문 제목이다.어텐션은 기계가 ‘무엇을 집중해서 볼 것인가’를 배우도록 설계하는 기술이다. 언어 모델이 다음으로 생성할 단어를 계산할 때 어떤 부분을 더 집중해서 참조할 것인가를 알려준다. 트랜스포머는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셀프 어텐션’을 수행해 놀라운 성과를 냈다. 최근 오픈AI가 공개한 동영상 생성 모델 ‘소라’(Sora)도 트랜스포머가 주요 축이다.인공지능이 ‘집중’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인류의 집중력은 반대로 역사상 가장 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