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이 사회악의 동력이 된다면?

[정희진의 낯선사이] 나의 사랑이 사회악의 동력이 된다면?

2018년 서울 강남구에 있는 클럽 버닝썬에서 발생한 버닝썬 게이트는 젠더폭력의 종합세트였다. 이 글에서는 마약 유통, 정치인 개입, 경찰과 소방 공무원 간 유착, 재벌가 자녀의 누적 범죄는 논외로 한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 동영상을 단톡방에서 공유하고 유포한 이들은 가수 승리, 정준영 등이다. 마약 유통 및 성폭력 혐의로 수차례 피소된 박유천까지,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죄질이 ‘독특하기에’ 이들은 이후 공적인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그냥 ‘일반인’으로 살면 된다. 미국처럼 몇백년형을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피해 여성의 고통을 즐기며 “○○ 냠냠 쩝쩝, ○맛?” “(군)위안부급” 등의 ‘토크’를 나눈 이들은 ‘재능 많고 열정에 가득 찬 미남’ 연예인이었다. 키 크고 돈 많고 외국어에도 능하다. 사건이 드러나자 팬들의 일상은 무너졌다. 동료의 속임수에 넘어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등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팬들도 상당수다.

스타에 대한 사랑이 정체성이자 삶의 의미였을 팬들의 심정을 말하기 전에, 왠지 기시감이 든다. 명백한 현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정치인 팬덤이 그렇고, 1989년 중국의 톈안먼 사태 당시 눈앞의 유혈 사태를 보면서도 “(우리)인민의 군대가 그럴 리 없다”며 울부짖었던 시민들. 여성운동의 부패를 문제 제기한 인권운동가 이용수님의 목소리를 부정하면서 “30년 운동 폄훼하는 보수언론 부정·혐오에 맞설 힘을 키울 때”라는 엉뚱한 주장을 폈던 일부 진보 세력.

시공간은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방어기제가 도를 넘을 때 공동체를 어떻게 망가뜨리는가를 보여준다. 이들의 완강함은 자기 보호 때문이다. 진실에 직면하면, 본인도 지지했던 가해자와 공범이 되므로 피해자, 증언자를 비난한다. 자신의 과거를, 과오를 숨기는 데 온 힘을 다한다.

뿐만 아니라 실태를 깨닫고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낙인찍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가장 보수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런 이들은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가 옳다. 민족주의, 남성연대, “보수언론의 준동” 등은 이들이 쉽게 동원할 수 있는 도구이다.

성범죄자를 사랑했던 팬의 각성

“미투 이후 여성 팬덤의 집단 트라우마를 유쾌하게 성토한”(임수연 평론가) 다큐멘터리 <성덕>(감독 오세연)은 이 문제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분열적으로, 그래서 정확히 다룬 작품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함께 2021년 제23회 부산독립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성덕’은 성공한 덕후라는 뜻.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御宅)의 한국식 발음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집 안에만 틀어박힌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어떤 분야에 집중하여 전문가 이상의 열정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성공한 덕후는 덕후행위(‘덕질’) 중에 스타와 뭔가 이루어진 이들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 주체이다. 이 산업은 이들의 아낌없는 소비와 무조건적인 사랑 없이 작동할 수 없다.

나도 성덕이 된 적이 있다. 최근 출간된 이창동 감독님의 각본집 <밀양>에 작은 글을 썼는데, 감독님이 사인한 책을 보내주셨다. 나는 오로지 주변에 자랑하기 위해 책을 사들였다. 나 역시 특정 텍스트의 덕후여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나오면 피해 다닌다.

팬덤 없는 스타는 무의미, 아니 불가능하다. 이 상상된 공동체(팬들만의 국가)의 국민이 대개 여성이기 때문에 “오빠 부대” “~빠순이”라는 비하가 등장했다. 하지만 남성 스타를 좋아하는 여성들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공익 활동을 하면서 스타를 보호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남성 문화가 여성 스타를 사랑하는 방식은 어떤가. 여성 스타의 굿즈라도 구매하는가. 오랜 경력을 쌓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는가. 그렇지 않다. 대개는 성적 대상화를 일삼는다. 버닝썬 사건은 남자 스타가 직접 여성(팬)에게 폭력을 일삼은 경우다.

1950~1960년대 서구에서 소녀팬의 남성 연예인에 대한 열광은 “10대 여성의 억압된 성욕의 대리 표출”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었다. 1980년 6월, 미국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레이프 개릿의 방한은 나도 기억이 난다. 1969년에는 영국의 팝스타 클리프 리처드가 방한했는데, 김포공항과 공연장에 몰려든 소녀들의 모습은 현대사의 한 장면에 남을 만하다. 당시 젊은 여성들은 속옷을 벗어 던지고 실신해 들것에 실려 나갔다. 1969년에! 상황은 한참 바뀌어 이제 우리는 자국 스타에게 열광한다.

상대 아닌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라

<성덕>에 출연한 덕후들은 몹시 괴로워한다. 어떤 인터뷰이는 얼굴을 가리고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나의 사랑이 정준영의 성범죄를 가능케 했다면? 자신감과 에너지를 주었다면?

남성 연예인을 열렬히 응원하고 돈을 썼던 ‘덕질’의 당사자들은 이 사건의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스타와 팬의 성별화에는 삼중의 권력관계가 있다. ‘개인 정준영’과 ‘여성 팬 개인’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숫자는 다르다. 즉 여성이 겪는 일상의 성차별에 더하여 사랑의 보편적 특성에서 발생하는 사랑하는 자와 받는 자의 권력관계가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스타는 소수고, 팬은 다수다. 일대일의 배타적 관계는 불가능하다. 세 경우 모두 남성 스타가 여성 팬을 압도한다.

그러나 모든 권력관계가 그렇듯, 관계에는 언제나 전복의 가능성이 있다. 사랑받는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은 사랑의 원천이 자신의 매력 때문인 줄 안다는 점이다. 천만의 말씀. 사랑은 하는 사람의 임의적 의지에 달려 있다. 주도권은 팬들에게 있다.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일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들은 늘 겸손해야 하고, 받는 자로서 책임감과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모든 사랑에는 끝이 있으므로 이별 즈음, 사랑했던 이들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하지만 않아도 평균 이상의 인간이다. 자신을 사랑했던 이들로부터 “내가 저런 인간을 좋아했다니! 미쳤지” 이런 소리를 듣거나 우울증을 앓게 하는 이들은 주님이나 부처님의 조치가 필요하다.

<성덕>은 개인의 행위가 얼마나 사회적인가를 보여준다. 사랑은 없다. 자기 확신일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박근혜씨의 광적인 지지자들이 등장하는데, 감독은 그들에게서 자신의 옛 동료, 즉 각성하지 못한 정준영씨의 팬들을 본다. ‘김기덕 감독처럼’ 작품에서 폭력을 미화하는 경우와 배우 개인의 범죄 행위는 다르다. 버닝썬 게이트와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나는 이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을 적극 옹호했던 맷 데이먼이나 동성을 상대로 수십 번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가 자신은 억압받는 성소수자라고 강변한 케빈 스페이시의 영화를 볼 수 없다. 그들의 그 많은 영화를 봤던 나 역시 글로벌 차원에서 그들의 권력에 힘을 실어준 관객일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이것이 사회구조적 모순으로서 젠더의 힘이다.

세상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인간관계다. 개인 간 관계는 물론 국가도 실체가 아니라 관계다. 그중 가장 치열한 형식은 사랑이다. 관계의 성격에 따라 충효, 중독, 집착, 신앙, 이데올로기, 폭력까지도 모두 사랑의 이름들이다. <성덕>이 좋은 작품인 이유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자신의 성찰을 그린 데다 이 주제가 무한한 확장성이 있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내가 열광한 스타가 나와 같은 여성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랑은 자유지만, 조심스럽고 책임이 따르는 매우 어려운 실천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사랑할 때는 잘 모른다. 많은 여성들이 가족 내 남성 구성원(아버지, 남편, 아들…)이 집 밖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상대의 사랑을 의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고 반성해야 한다. 사랑의 대상이 자녀든, 스타든, 정치인이든 나의 사랑은 언제든 사회악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사랑(수용)과 독선(배척)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바람직한 사회라면 사랑과 독선은 반대여야 하지만, 그런 사회는 사라졌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그 누가 쉽다고 했나.” 어려운 사랑 대신 비판적 지지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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