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의 순환과 계획의 새로운 지평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
[시론] 새마을의 순환과 계획의 새로운 지평

서울 서대문 밖 신촌은 1930년대에 조성됐다. 당시 일종의 ‘신도시’로 만들어졌다. 이름의 뜻도 ‘새(新)마을(村)’이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

1990년대에 서울 바깥에 지어진 5개의 신도시는 규모가 말 그대로 도시급이다. 여기 지어진 30여만호의 주택들 덕분에,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은 ‘목표를 달성한 최초의 주택계획’이 되었다. 어느덧 이 주택들이 동시에 노후화되고 있다. 30여년 전 논밭에 처음 지을 때엔 일시·대량으로 공급해도 대규모 이주민 걱정은 안 해도 됐다. 하지만 지금은 전·월세 대란이 문제가 된다. 5개 1기 신도시는 아파트 단지만 해도 414개다. 사유재산이니 각자 준비되는 대로 알아서 하라 할 규모나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좋든 싫든, 같이 순서를 정하고 돌아가면서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대책에서는 이에 대한 복안이 보이지 않는다. 이주대책 수립이나 ‘특별정비구역’ 및 ‘선도지구’의 지정 권한과 책임은 모두 지자체로 넘겼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매우 걱정된다. 지역구마다 후보들은 당을 막론하고 “우리 지역 먼저! 더 많은 특례를!” 경쟁적으로 외치게 될 것이다. 많은 부작용을 남긴 뉴타운의 상처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뉴타운도 뜻은 ‘새(New)마을(Town)’의 계보를 잇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다. 몇번의 선거를 거치며 전국에 수백개 지구가 지정되었다가, 과다 지정 이후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니 주거환경은 나빠졌고, 갈등도 심화됐다. 결국 주민 동의를 거쳐 대부분의 구역이 해제된 것이 불과 10여년 전이다. 지정에 앞장섰던 분이 해제에도 앞장서는 웃지 못할 장면도 있었다.

특례의 내용도 문제다. ‘안전진단 면제’나 ‘종상향’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 경기도 쓰레기 매립 잔여용량은 불과 1년치 정도밖에 안 남았고, 신·증설은 난항을 겪고 있다. 멀쩡한 집을 허물려면 ‘매립지확보증명제’라도 실시해야 할 판이지만, 돈을 낸다 해도 묻을 곳이 없다. 수도권 새 아파트를 위해 지방이 쓰레기를 떠안으라고 할 배짱(?)들은 없는지, 이 문제엔 다들 묵묵부답이다.

그린과 순환 관점의 새 접근 필요

과거에는 용적률만 늘려줘도 ‘일반분양’ 수익의 덕을 크게 봤다. 지금은 다르다. 최근 가구 수를 2배 늘린 서울의 1만2000호짜리 어느 단지는 자부담금 때문에 시공사와 분쟁도 겪었고, 분양도 현재 고전 중이다. 수도권 인구는 2019년에 전체의 절반을 넘었고, 2021년부터 전체 인구는 줄기 시작했다. 아무리 1인 가구가 늘고 이주민이 들어와도, 노후화에 직면한 전체 200만호 차원에서는 1.1배 늘리는 것도 버거운 이유다.

용적률을 튀겨 ‘남의 돈 보태’ 재건축·재개발할 수 있었던 분들은 단군 이래 유일하게 운 좋았던 세대라 해도, 우리나 후손들은 어쩔 것인가? 늘어난 주택 수만큼 다음 정비 시기의 후손들에게 더 큰 부담을 넘겨주지 않고, 난방비 부담을 줄이며 기후위기에도 대처하고, 철거와 신축 과정에서 발생할 막대한 양의 폐기물을 처리하려면, ‘그린’과 ‘순환’의 관점에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제로 에너지 주택’으로, 설비가 노후화되면 적은 비용으로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장수명 주택’으로 짓는 조건이라면, ‘그린뉴딜’의 차원에서 공공이 보조·융자·출자를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할 것이다. 전기차라면 사유재산에도 보조금을 주는 현행 제도나,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에는 30년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어차피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르면 2050년부터 모든 주택은 제로 에너지 1등급이어야 한다.

‘그린’은 모든 노후 주택을 대상으로 해야 하겠으나 ‘순환’은 인구 밀집지역만을 대상으로 해도 될지 모른다. 그게 50만호라 해도, 대략 4%인 연간 신축물량이 받쳐준다 전제하면, 한 번에 2만호씩 총 25회차가 돌아야 한다. 첫 팀이 이주 완료와 철거까지를 통상의 절반인 3년 만에 해내고, 그 이후 나머지가 매년 ‘일사불란하게’ 정비에 돌입하는 기적을 가정해도, 마지막 팀의 순서는 2051년에나 찾아오는 것이다.

28년 뒤의 인구와 경제 상황은 현재 우리의 예측 범위 밖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들이 모여 완벽한 계획을 짜려 해도 소용없다. 현대 국가는 하향식 마스터플랜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이에 새로운 계획 패러다임으로 ‘교류적 계획(Transactive Planning)’을 존 프리드먼이 내놓은 것이 1970년대 초다. 계획이론의 또 다른 거장 안드레아스 팔루디는 ‘어떤’ 안을 만들지에 대한 ‘실체적 계획’과 함께, 이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절차적 계획’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단체장의 임기는 7번, 장관은 더 많이 바뀔 시간 동안 추진할 프로젝트다. 지금은 완벽한 계획을 만들려 하는 것보다 차라리 ‘올림픽조직위원회’처럼 중장기 과제를 끌고갈 안정적인 조직을 구상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건설폐기물 매립의 소관 부처인 환경부는 물론, 그린 리모델링과 관련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등도 관련이 있을 테니 ‘순환정비위원회(가칭)’는 국무총리 산하가 좋겠다. 참고로 1기 신도시를 처음 개발할 때에도 총리 산하 범정부기구로 ‘신도시건설조정위원회’가 있었다.

각자도생 넘어 협력상생 만들어야

탈탄소 토지 이용과 교통체계를 위해서라면 역세권 같은 곳은 적극 고밀화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은 다음 순번 이주민들을 위한 대책에 써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토지은행의 역할을 주택에까지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불로소득 환수 차원만이 아니라 사업 성사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새마을 운동에 대해선 여러 평가가 있지만, 해봤자 안 된다는 당시의 패배주의를 떨쳐낸 의식 개혁의 의미는 깊다. 역사의 한 사이클이 돌았다. 앞으로의 새마을에서 우리가 극복할 과제는 ‘각자도생’주의다. ‘협력 상생’의 질서를 긴 호흡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당장 녹물이 나오고 동파 걱정에 세탁기를 못 돌리는 집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처지를 ‘진심으로’ 개선하고 싶다면, 달리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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