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고 베어내려던
마당의 모과나무에
어느 날인가부터 연둣빛 어른거린다
얼마나 먼 곳에서 걸어왔는지
잎새들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
꽃 한 송이 내보이지 않는다
모과나무 아래 서 있을 때면
아픈 사람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적막이 또 한 채 늘었어요
이대로 죽음이
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 싶은
바람 불고 고요한 봄 마당
김명리(1959~)
시인이 사는 집 마당 한쪽에 모과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봄이 와도 잎새를 틔우지 않아 지난겨울 추위에 얼어 죽었을지 모른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과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니, 봄이 다 건너갈 무렵 가지에 연둣빛이 어른거린다. 기쁨도 잠시, 순간의 판단 실수로 살아 있는 나무를 베어버릴 뻔했다고 자책한다. 미안한 마음에 매일 모과나무 상태를 살펴본다. 한데 잎새가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해가도 끝내 꽃을 피우지 않는다.
연두와 초록이 살아 있는 나무를 증명하듯, 꽃은 삶의 연속을 상징한다. 나무에 꽃이 펴야 벌과 나비가 날아와 북적이고,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는다. 사람 사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집안에는 ‘웃음꽃’이 활짝 펴야 하고, ‘꽃 같은 시절’에는 사랑을 꽃피워야 한다. 바람이 불어도 “봄 마당”은 고요하다. 모과나무 아래 서 있던 시인은 문득 아픈 사람을 떠올린다. “또 한 채 늘”어 난 적막, “죽음이/ 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다는 시인의 사유가 깊고도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