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의 서정

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 손톱의 서정

손톱은 내가 처음 버린 영혼
손톱은 영혼이
타원형이다

손톱은
죽어서 산다
끊임없이 나를 밀어낸다

손톱을 오래 들여다보면
나무뿌리가 뻗어 나오고
진흙으로 두 눈을 바른 아이가
더러운 귀를 씻고 있다

손톱을 깎으면
죽은 기차들이 나를 통과해 가고
늙은 쥐가 손톱을 먹고 있다
늘 바깥인
손톱의 밤은
얼마나 캄캄한가
사랑은 개연성 따위는 필요 없다

멀리 날아간 손톱은
가끔 얼굴이 되기도 한다

서안나(1965~)

시인은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목소리의 진동을 선사하는 것”이 시라 했다. ‘아름다움’이 가미되면서 손톱은 손가락 보호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손톱에서 육체가 아닌 ‘영혼’을 본다. “끊임없이 나를 밀어”내는 손톱의 영혼은 타원형이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똑같은 원과 달리 타원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다. 원이 평등이라면, 타원은 불평등의 세계다. 손톱이 자라는 손도, 손톱을 자르는 손도 결국 내 몸이므로 불평등은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손톱을 오래 들여다보면” 뿌리 깊은 전통과 차별로 상처받은 아이가 보인다. 손톱 깎는 소리는 죽음을 연상시키고, 쥐가 손톱을 먹으면 자신의 도플갱어가 돼서 나타난다는 말도 떠올린다. “개연성 따위는 필요 없”는 사랑에 이르면 손톱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시적 정황상 연인보다는 가족에 더 가깝다. ‘나’는 늘 가족 바깥에 머물고, 앞날은 불투명하다. “멀리 날아간” 나는 가족의 얼굴이다. 시인이 선사한 ‘손톱’의 낯선 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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