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가해자가 마땅한 처벌을 받으려면…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지난 1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자문특별위원회에서 디씨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 차단 문제에 대해 유해 정보가 있는 사이트이긴 하지만 차단할 정도는 아니라는 자문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16일 한 청소년이 고층 건물에서 투신하는 과정을 SNS로 중계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해당 청소년이 디씨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난 남성으로부터 성착취 피해를 당했다는 점이 드러났고, 이달 5일에도 해당 갤러리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청소년이 자살 시도를 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경찰이 임시 폐쇄 조치가 필요하다고 요청한 것에 대한 심의였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이에 대한 언론 보도 중 일부는 해당 갤러리의 폐쇄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당 온라인 공간을 통해 다수의 가해자가 다수의 피해자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므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다만 이 문제를 특정 온라인 공간을 ‘우범 지대’로 취급하여 해당 공간에 청소년의 진입을 막으면 해결되는 문제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해당 온라인 공간 외에도 각종 SNS에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여성에게 착취적 목적으로 접근하는 그루밍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서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이용자에게 가해자들이 DM을 보내거나 채팅 플랫폼으로 유도하여 그루밍 성착취 범죄를 저지르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SNS나 우울증 갤러리에서 일어난 그루밍 성착취나 스토킹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어도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현실 역시 오래되었다. 디지털 성범죄 지원 여성 단체들은 경찰이 점차로 고도화하는 가해자의 성착취 수법에 대한 적극적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비판해 왔다. 또한, 현행 법제도의 한계를 이용하는 디지털 성범죄 수법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 수사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우범 지대’라는 인식은 피해자가 그러한 공간을 이용하였다는 것, 자신의 신상 정보를 쉽게 누출하거나 사적 고민을 고백하였기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비난의 시선과도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에게 디지털 미디어 공간은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생활 공간이다. 친구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것, 현실 생활에서 나눌 수 없는 고통을 온라인에서 토로하고 공감해주는 말을 통해 위로받으려는 행위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고통이나 우울함 등의 감정적 상태를 이용하는 범죄자들이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벗어나려 하면 자신의 신원이 알려져서 오프라인 생활 세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을 유도하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괴롭힘이 그저 일상적 커뮤니티 놀이라는 인식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행위는 범죄가 아니고 행위자는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디씨인사이드와 같은 익명성 기반 커뮤니티에 널리 퍼져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실시하는 사이버폭력실태조사 보고서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확산 및 재생산 원인을 물을 때 “익명성 때문에 붙잡힐 염려가 없기 때문”이라는 항목을 사용한다. 2022년 조사에서 청소년은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항목에 이어 “익명성 때문에 붙잡힐 염려가 없다”라는 항목에 많이 동의했다. 사실 이 두 항목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가해자의 범죄 행위는 사소하게 만들고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현재의 대응이 이와 같은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가해자가 마땅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보다 적극적인 수사를 수행하고 제대로 된 구형을 하는 사법 체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우범 지대로의 접근 차단’으로만 이 문제의 해결책을 축소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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