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정책 결정자의 자격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가사노동자 수입 정책 기획자는
돌봄 경험 별로 없을 남성들이다

타인의 돌봄 당연한 것으로 누리고
정당한 대가 고민 안 한 이들이
돌봄정책 결정할 자격이 있을까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자주 그에 대한 감사(感謝)를 잊는 것들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의 대답은 어떤 것일까? 공기나 숲, 가족, 친구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혹시 그중에 ‘돌봄’을 생각한 분이 있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거나, 노인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은 물론, 자신의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시간이나 능력이 부족한 이들의 일상을 보살피는 노동이 돌봄이다. 성인이 되어도 우리들 대다수는 돌봄노동의 일정 부분을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정성껏 차려진 식탁, 깨끗이 치워진 방, 뽀송뽀송하게 마른 욕실의 수건은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 줄 뿐 아니라, 행복감까지 선사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그러나 돌봄의 대부분은 ‘그림자 노동’으로 존재한다. 늘 있어 왔지만 눈에 띄지 않는 노동이다. 어머니의 노동이 그렇다. 시장에서 값이 치러질 때는 가장 싼 노동에 속한다. 정확히 말하면,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도 없다.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전부다. 나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내가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이지만, 나는 그것에 특별히 감사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해 왔고, 아내가 해 왔고, 싼값에 누군가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그래서 그 노동을 하려는 사람들을 점점 더 찾기 어렵게 되었다. 어머니인 여성들도 소득을 갖는 다른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누가 키우나? 아이와 저녁밥을 함께 먹을 수 없는 장시간 노동 사회에서 아이나 어머니 모두 행복하기 어렵다. 결론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생률을 지속하는 나라에서 출생률을 높이겠다고 발표한 정책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수입’이다. 일하는 어머니의 돌봄 공백을 메워주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최저임금의 절반인 100만원짜리 인력이라고 하더니 차별이라는 비판이 일자 2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한다. 정치인에서 시작해 행정관료가 나서더니 서두르라는 대통령의 지시까지 떨어졌다.

원칙적으로 가사노동자의 국내 이주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 다른 업종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굳이 가사노동에서만 외국인을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이주가 확대되고 있는 21세기 사회에서 가사노동 목적으로 외국인 여성의 이주를 막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편협한 사고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성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돌봄’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과연 이 방법 이외엔 없는가? 돌봄은 하기도 싫고 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으로 싼값으로 일할 누군가가 있다면 지구 저편에서라도 데려와 책임을 전가해 버리면 되는 것인가? 왜 돌봄은 여성과 어머니의 책임으로만 주어지는가? 이런 질문들과 관련해 외국인 가사노동자 수입은 도덕적 정당성도, 경제적 합리성도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 여성들의 생각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수입하겠다는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한 이들은 과연 돌봄노동으로 얼마나 땀을 흘려 보았을까? 아이의 기저귀를 빨고, 가족의 식탁을 차리고, 노인의 일상을 돕는 경험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그런 노동이 얼마나 많은 책임감과 인내를 요구하고, 얼마나 깊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느껴본 적이 있을까? 타인의 욕구에 따라 대응해야 하는 종속성, 그러나 동시에 타인의 안녕을 지킴으로써 소통하고 교감하는 관계지향성을 얼마나 깊게 경험해 보았을까?

언론 보도에 등장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수입 정책의 기획자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그들 중 타인을 돌보기 위해 긴 시간 자신의 욕구를 유예하고 삶을 쏟아부은 경험을 가진 이들이 있으리라곤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살았더라면 그런 자리에 오르기도 어려웠을 테니. 지금 해야 할 일은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봐야 하는 이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보살필 수 있도록 일과 생활의 시간표를 바꾸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저녁 식탁에 마주 앉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노동의 의무와 자격뿐만 아니라 돌봄의 책임과 권리 또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돌봄노동 정책을 기획한다면, 돌봄 경험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타인의 돌봄을 당연한 것으로 누리고 정당한 대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돌봄 정책을 결정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