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시인·작가

이 순간에도 일본 후쿠시마에서는 핵 오염수가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 일본이라는 섬을 떠받치고 있는 생명의 바다에 방사능을 투척하고 있다. 오염수 위에 떠있는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지구촌 어느 나라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일본 열도는 조용하다. 반생명·반윤리·반문명의 업보를 어찌 견딜 것인가. 세계인의 탄식과 원망의 무게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일본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김택근 시인·작가

김택근 시인·작가

학승 탄허 스님(1913~1983)은 일찍이 ‘일본 침몰’을 예언했다. 1975년 여름, 스님이 <화엄경>을 최초로 완역하는 대역사(大役事)를 마쳤을 때 필자는 말씀을 얻으려 찾아갔다. 그때 탄허는 세 가지를 예측했다. 머잖아 소련이 붕괴할 것이고, 한국은 국운이 왕성해질 것이며, 언젠가 일본 열도가 침몰할 것이라 말했다. 소련이 미국에 맞서 기세등등할 때였고, 한국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살기(殺氣)가 사회 구석구석을 핥고 있을 때였다. 우리나라가 곧 융성할 것이라는 예측은 당시의 암울한 현실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탄허는 여인들의 얼굴을 보라고 했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윤기가 흐른다고 했다. 어느 집단이건 번성의 기운은 사람들의 외모에서 감지된다고 했다.

그 후 소련은 20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거짓말처럼 해체되었고,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했다. 탄허는 분명 미래를 내다봤다. 4·19혁명 발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패배, 중국 마오쩌둥의 사망, 박정희의 금속에 의한 참변 등을 예언했고 그때마다 적중했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이 각축을 벌일 때도 아직은 3김의 시간이 아니라며 제3의 인물(전두환)이 집권할 것이라 단언했다.

탄허는 인류에게 닥칠 재앙도 알려줬다. 세계적으로 전쟁이 계속 일어날 것이고, 해일과 지진이 빈발하며, 불 기운이 북극으로 들어가 빙산이 빠르게 녹을 것이라 했다. 또 23도 7분쯤 기울어진 지구의 축이 바로 서면서 전혀 다른 후천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탄허의 예지력은 높고 깊은 화엄학의 식견에서 퍼올린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동양사상에 능통했기에 <주역>에 기대었고, 김항이 쓴 <정역>도 참고했을 것이라며 정법에서 벗어났다는 시각도 있다. 탄허도 자신의 예언은 도(道)가 아닌 술(術)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앞이 보이는데 어찌 말하지 않을 것인가.

필자가 받은 세 가지 예언 중에 일본 열도의 침몰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핵 오염수를 방류하는 무도한 일본을 보면서 자꾸 탄허의 말씀이 떠올랐다. 탄허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일본 침몰을 수차례 언급했다. 일본은 ‘손방(巽方)’인데 손(巽)은 <주역>에서 ‘입야(入也)’로 풀고, 이 입(入)이 일본의 침몰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일본 열도의 3분의 2가량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침몰해야만 할까.

“미래의 역사에 관한 한 일본은 가장 불행한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선조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미래의 업보가 분명히 작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지난 500년 동안 무려 49차에 달하는 침략행위를 일삼았습니다.(…) 반면 우리 선조들은 두들겨 맞고만 살았지 남을 해칠 줄 모르고, 동양의 가치관을 그대로 지키면서 살아왔다는 것은 우리나라 장래를 밝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양 사상의 근본 원리인 인과의 법칙이요, 우주의 법칙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또 1975년 12월, 탄허는 대담을 통해 핵 재앙을 분명하게 경고했다. “인류를 파멸시킬 세계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지진에 의한 자동적인 핵폭발이 있게 되는데, 이때는 핵 보유국들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을 것입니다. 남을 죽이려 하는 자는 먼저 죽고, 남을 살리려고 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사는 법입니다.”(위와 같은 책) 흡사 36년 후 2011년에 일어날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미리 본 것만 같다.

일본은 각 분야에 인재들이 즐비하다. 그럼에도 국가권력의 횡포에는 무기력하다. 국민들이 힘을 모아 저항하는 법을 모른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뭉쳐서 민심이 바다를 이룬다면 어찌 그 바다에 정치인들이 핵 오염수를 퍼붓겠는가. 탄허는 “수소탄을 막는 것은 민중의 맨주먹뿐”이라고 했다. 일본 침몰, 탄허는 떠났고 예언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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