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명판결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 오늘날의 명판결

청대 초엽, 두 건의 ‘명판결’이 있었다. 하루는 젊은 하인 하나가 평소 자던 곳이 아닌 곳에서 잤다. 그의 잠자리가 비게 되자 곽안이란 자가 그곳에서 잤다. 그런데 젊은 하인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다른 하인이 자고 있던 곽안을 젊은 하인인 줄 알고 죽였다. 이에 곽안의 부친이 그를 관가에 고발하였다.

당시 현령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살인한 하인에게 관용을 베풀어 아무런 형벌도 내리지 않았다. 곽안의 부친이 울부짖으면서 호소했다. 반평생 겨우 아들 하나 두었을 뿐인데 그 아들이 죽었으니 이제 누구를 의지해 살아가야 하냐며 절규하였다. 그러자 현령은 살인한 하인을 아들로 삼으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들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원수를 아들로 삼아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를 갈며 관청에서 물러나는 것뿐이었다.

이에 질세라 다른 곳의 현령도 기가 막힌 명판결을 내놓았다. 자신이 다스리는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잘 살고 있던 부부 중 남편이 살해당했다. 부인이 살인범을 관아에 고발하자 현령은 크게 진노하며 즉각 살인범을 잡아들였다. 그는 탁자를 내리치며 호통쳤다. “저들이 얼마나 금실 좋은 부부였는데 너는 어쩌자고 부인을 과부로 만들었느냐? 이제부터 네가 저 부인의 남편이 되거라! 그래야 네 처가 과부가 될 것 아니냐.” 그러고는 부인과 살해범이 부부가 되라는 판결을 내렸다.

눈치챘겠지만 둘 다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다. 청대 문인 포송령이 지은 <요재지이>라는 소설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그는 이를 기록하면서 이토록 명석한 판결은 진사에 급제한 뛰어난 두뇌들이어야 고안해낼 수 있지, 다른 출신은 감히 엄두도 못 낸다고 명토 박았다. 지금으로 치면 사법고시에 합격한 정도는 돼야 이런 명판결을 낸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한 명판결이 착착 쌓이고 있다. 양식을 지닌 시민으로서는 하나같이 엄두도 못 낼 탁월한 판결들이다. 마침 우리 사회에선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역량이, 현실을 통찰할 수 있는 역량이, 사실을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러한 명판결은 계속 나올 듯싶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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