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을 훼방 놓는 사회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 축적을 훼방 놓는 사회

“유리에는 세월이 스며들지 않아요.” 언젠가 나와 교정을 산책하던 건축학자께서 불쑥 던진 말이다. 교정을 잔뜩 채운, 유리나 금속 재질로 외벽을 마감한 ‘깊이 없는’ 건물들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관악산 자락에 터 잡은 지 50년 가까이 됐건만 교정에선 시간 깊은 장소가 풍기는 내음을 여간해선 맡기 힘들다.

그렇게 세월의 깊이가 스며들지 않는 교정은 세월이 흘러도 다시 옅어지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 양 싶어 더욱 씁쓸하다. 스며든다고 함은 무언가가 축적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떨까? 세월의 깊이, 이를테면 우리 사회가 일구어온 좋은 경험, 우량한 전통 같은 것이 제대로 쌓이고 있을까?

역사는 축적이 되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고 일러준다. 꼭 성공만이 쌓여야 빛을 발하는 것도 아니다. 실패도 마찬가지다. 자꾸 실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설파했듯이, 실패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지식의 획득이다. 그래서 실패의 경험이 축적되었을 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된다. 실패를 한 것이 아니라 시도를 한 것이며, 그 시도가 축적됨으로써 빛나는 성과가 산출되었음이다.

실패 같은 부정적 경험도 쌓이면 그 결과가 놀라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긍정적 경험이 축적되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간 쌓아왔던 좋은 경험, 우량한 전통이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일구어낸 전통이 무시되고, 개도국에서 시작하여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경험이 뒤틀리고 있다. 그렇게 우량한 전통이 무너지고 선한 경험이 휘발된 자리는 가짜와 날조로 채워지고, 남 탓과 불신으로 또 혐오와 갈등, 광기로 물들고 있다.

좋은 경험과 우량한 전통이 축적되지 않는 사회는 그저 옅은 사회일 뿐이다. 옅은 사회는 결코 미더운 사회가 될 수 없다. 그 옅음 속에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자리 잡기 힘들다. 게다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적은 사회는 절망을 널리 전염시킨다. 하여 과거로부터의 선한 축적을 훼방함은 대놓고 미래를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피폐된 미래는 악한들의 쏠쏠한 먹잇감이 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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