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노불, 윤로민불, 명로문불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내로남불의 상징으로 항소심에서까지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이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이 높은 지지를 받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하긴 의사, 대통령, 야당 대표 등 지도층마저 도덕불감증에 빠져 있으니,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 ‘노블레스 후안무치’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내로남불의 상징으로 항소심에서까지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이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이 높은 지지를 받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하긴 의사, 대통령, 야당 대표 등 지도층마저 도덕불감증에 빠져 있으니,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 ‘노블레스 후안무치’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탈진실사회’와 정치적 양극화.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키워드다. 언제부터인가 가짜뉴스가 범람하며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사라져버렸다. 그 결과, 정치적 적대와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해지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은 진영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우리 편이 누구인가 하는 진영일 뿐이다. 이 같은 진영논리는 결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과 이중잣대로 나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생각이 진보적일 수도, 보수적일 수도, 관대할 수도, 엄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생각이 관대할 수도, 엄격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나와 우리 진영에는 무한대로 관대하고, 남과 반대진영에는 추상같은 이중잣대다. 조국사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중잣대의 결과로 “우리 편은 모든 것을 걸고 지켜야 할 절대선, 반대편은 목숨을 걸고 척결해야 할 절대악”이 되고 만다.

의과대학 정원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방침에 따라 벌어진 의사들의 ‘의료파업’은 이중잣대의 대표적인 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평균 의사 수가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라든가, 의사가 다른 직업과 달리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직업’이라든가 하는 기본적인 사실들을 반복하지 않겠다. 정원 확대에 대해 “의사가 많으면 고통스러운 삶이 연장될 뿐”이라느니, “반에서 20~30등 하는 학생도 의대에 가고 의무근무를 하는 것을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느니, 국민들이 “최소한의 지성이 있어야 의료가 무너졌음을 깨달을 텐데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느니 하는 의사들의 충격적인 엘리트의식과 망발들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김영삼·김대중 정부가 사법고시 합격자 수를 2배로 늘리고 이후 정부가 법학대학원 정원을 확대할 때 의사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의사들이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권 투쟁 파업에 대해, 가깝게는 간호사들의 파업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줬느냐는 것이다. 간호사들에게는 환자들을 생각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호소했고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파업은 로맨스고 ‘무식하고 공부 못했던’ 노동자들의 파업은 불륜이라는 ‘의로노불’의 이중잣대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 정권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문재인 정권에서 수사외압에 저항하며 ‘공정과 법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윤 정권의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인 김혜경 여사의 법카 사용 등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게 다루고 있다. 결혼 전 있었던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명품백 스캔들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받은 것에 대해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좀 문제라면 문제”라고 변명했다. 김혜경씨가 명품백을 받았어도 ‘인정상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냥 넘어갔을까? 세상을 향해 추상같던 법의 칼날이 자기 아내에 대해서는 태평양을 품을 것 같은 관대함 속에 녹아 사라져버린다. 게다가 해병대원 사망사건의 외압 의혹 핵심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하고 출국금지까지 풀어 출국시켜 ‘해외도피’ 논란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 쪽에서 하면 로맨스이고 민주당이 하면 불륜이라는 ‘윤로민불’이다.

민주당 주류세력인 ‘친명’과 이재명 대표도 매한가지다. 이들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에도 불구하고 예외조항을 만들어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게 면죄부를 줬다. 총선 공천과정에서도 부정부패 의혹으로 기소된 노웅래, 기동민 의원은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와 비례 이수진 의원은 별문제 없이 공천을 받았다. 기 의원은 지난해 “당무위원회는 이재명 대표, 자신, 이수진 의원에 대한 기소가 정치탄압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결국 자신만 공천을 못 받았다며 “형평성과 공정성, 일관성 또한 무너져내렸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이중잣대로 ‘친명횡재, 비명횡사’가 현실로 나타났다. 친이재명계가 하면 로맨스이고 친문재인계가 하면 불륜인 ‘명로문불’이다. 하긴 내로남불의 상징으로 항소심에서까지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이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이 높은 지지를 받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의사, 대통령, 야당 대표 등 지도층마저 도덕불감증에 빠져 있으니,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 ‘노블레스 후안무치’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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