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학창시절 벼락치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만약 내일의 나에게 할 일을 미루지 않았다면 벼락치기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마지막 순간의 집중력이 중요한 결과물을 가져오기도 하기에, 우리는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벼락치기의 일상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앞으로 4년간, 공약을 지켜야 하는 이유보다도 미뤄야 하는 이유가 산더미처럼 쏟아질 것이다. 국제정세, 경기 불황의 장기화, 검찰과 언론의 권력 남용 등 해일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주장이 우선시 될 것이 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도 좋겠지만 권력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진정한 새 출발은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 국회보다는 오히려 마지막을 준비하는 21대 국회의 벼락치기 효험이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

어차피 당분간 선거도 없다. 악의적인 프로파간다가 횡행하더라도 국민을 설득할 시간도 충분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임기 중 최저치를 기록하고 행정부가 레임덕 수준으로 무력해진 지금, 한 달여 남은 21대 국회의 동력은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만명의 피해자와 희생자를 발생시키고도 여전히 방치 중인 ‘전세사기 특별법’부터 안타까운 죽음도 모자라 부조리한 은폐마저 드러난 ‘채 상병 특검법’, 유족들이 1년 반 동안 거리에서 애타게 기다려도 멈춰버린 ‘이태원 특별법’까지. 국민이 연이어 죽어가도 요지부동이던 정부와 국회의 과거를 지울 때가 되었다. 지난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위 법안들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 만큼, 이번에는 기대가 좌절로 바뀌는 일은 없어야겠다.

앞서 언급한 과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지난 17일 별세한 박종철 열사 어머니 정차순 여사가 평생 염원했던 ‘민주유공자법’을 비롯하여 ‘낙태죄 보완입법’, 소위 ‘이승기법’이라 불리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등 각 분야에서 절실히 발의되었지만 멈춰버린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들 법안이 아직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5월 말까지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당사자, 시민사회, 전문가들이 충분히 고심하고 검토한 법안인 만큼, 이제는 순차적으로 통과시키는 일만 남았다.

과거의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게 새 약속의 실천을 기대하기 어렵다. 총선 결과가 대통령에 대한 비토 외에 뜨뜻미지근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지난 4년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종장에라도 유종의 미를 보인다면, 21대 국회를 실망과 무기력함으로 떠올리지 않고 앞으로의 정치 역시 새로운 기대감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케케묵은 지난 과제들을 넘어 내일은 내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21대 국회가 최선의 마무리를 해내기를 바란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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