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장을 박탈당한 MZ세대…이들을 돕고 함께해야만 하는 건 동시대 모두의 몫

김현우 탈성장과대안연구소장
김현우 탈성장과대안연구소장

김현우 탈성장과대안연구소장

한국 경제의 저성장 구조화는 확연하다. 한국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겪는 현상이다. 코로나19 여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부터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거의 제로 성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초반까지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던 한국이기에 저성장을 더 큰 타격으로 느끼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상대적인 느낌일 뿐이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고성장의 비결이었던 에너지집약형 수출 산업과, 내수와 생산 모두를 지탱할 인구 증가가 모두 한계에 처해 암울한 전망을 드리운다. 다른 한편으로, 물질적 성장을 제한하지 않고는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반박하기 어려운 시점에 이르렀다. 지금과 같은 세계 인구와 자원 소비 증가를 지탱해준 것은 산업 자본주의가 가져온 몇 개의 마술, 즉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 개발, 질소비료의 인공적 합성 같은 기술 개발과 세계화된 시장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마술은 완벽하지 않았고 온실가스와 독성 폐기물 누적, 토양 약화와 생물종다양성 상실이라는 대가를 남겼다. 이는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부터 스톡홀름복원센터 등의 2009년 ‘지구위험 한계선’까지 많은 연구가 실증한 결과다. 그래서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서도 ‘수축과 수렴’, 즉 세계의 총 배출량을 줄이면서 개별 나라와 개인의 배출 규모를 점차 비슷하게 만든다는 원칙이 큰 합의점을 이루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 작성 과정에도 성장과 불평등이 갖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이 전례 없이 많이 언급됐다. 탈성장을 경제이론으로 수용한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학’ 제안은 암스테르담 등 세계의 여러 도시 정부에서 현실 정책이 되고 있다. 한국만 산업 규모 증가를 계속하고 생산과 폐기를 줄이지 않으면서 기후위기 대응에서 예외일 수 있다는 생각과 지금 정부의 기후 정책이 오히려 공상적이다.

결국 저성장, 나아가서 탈성장은 우리에게도 진지하게 대면하고 받아들여야 할 의제로 다가왔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지(더글러스 러미스), 성장 없는 번영(팀 잭슨)이 가능할지, 물질적 소비에서 벗어나서 대안적 쾌락(케이트 소퍼)을 어떻게 누릴 수 있을지에 관한 구체적인 물음과 대답들이 이어지고 있다. 제로성장에 가까운 상황에서 배출을 감축하면서 복지와 민주주의를 꾸려가고 있는 나라들에서 교훈을 얻고 나누는 게 시급하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누구보다 자신의 일로 겪어야 할 한국의 이른바 MZ세대 이후에는 불안과 불만이 팽배하다. 그들은 경제 성장의 기회를 박탈당한 세대이자 탈성장을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하는 세대다. 베이비부머처럼 어려웠지만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고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는 세대가 아니며, IMF세대처럼 큰 아픔을 겪었지만 경제 회복과 성장을 통해 새로운 주류가 될 수 있는 세대가 아닐 것이다. 각자도생의 경쟁은 격화되고 국가는 금고가 바닥이고 자신도 어렵다며 정부 기능을 줄이고 69시간 노동을 운운한다. 과거의 방식으로 성장 동력 회복에 골몰하면서 위선적인 기후 목표를 던져 놓은 정부들에 신뢰감을 가질 수 없는 이 세대에게 ‘공정’은 가깝지만 ‘기후정의’는 그리 가깝거나 자명한 과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삶인데 기후위기 대응까지 부담하라고 한다면, ‘이걸요, 우리가요, 왜요?’라고 반문할 것이다. 특히 20대 남성 청년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공감 정도가 가장 낮게 나타나는 여론조사 결과는 심상치 않다.

그러나 기후행동에 나서는 청년들과 ‘인국공’ 사태의 청년들은 다르지만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성장 기회를 박탈당한 세대에게 탈성장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이들을 손쉬운 말로 응원하긴 어렵지만 함께해야 한다. 박탈성장 세대의 숙명은 다른 모두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들의 성장 없는 번영을 다른 세대들이 돕고 성공시켜야 탄소중립이든 지구회복이든, 그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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