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은 풍계리 폭파했는데 미국은 회담을 취소하다니

북한이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폭약을 사용해 핵실험장의 모든 갱도를 무너뜨리고 입구를 폐쇄했다. 향후 핵 관련 지상시설과 인력을 철수하면 폐기가 완료된다. 북한이 유일한 핵실험장을 폐기한 것은 미래 핵을 포기한 대담한 선제적 조치다.

그러나 미국은 6월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으로 쓴 이런 내용의 서한을 공개했다. 이는 국제관례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북한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무조건적 선제조치를 취해왔다. 6개월째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고위 인사들이 북한이 거부하는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거론하며 북한을 자극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압박을 넘어서 위협과 굴욕으로 다가올 것이다. 체제안전 보장 확신이 없다면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에서 보인 엄청난 분노와 열렬한 적대감에 기반해 슬프게도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번 회담이 열리기에는 부적절한 시기라고 느낀다”고 말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언한 바 없다. 물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리비아 모델 발언으로 자극하자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 발언으로 맞선 적이 있다. 앞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볼턴 보좌관의 도를 넘는 발언에 같은 취지로 대응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 발언이 아닐뿐더러 판을 깨자는 것도 아님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이를 이유로 회담을 취소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력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북·미처럼 신뢰가 없는 국가 사이에서는 신뢰를 쌓아가며 협상하는 길밖에 없다. 어느 한쪽이 구체적인 조치로 신뢰를 쌓은 뒤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상대가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워 압박하는 것은 회담의 모멘텀을 약화시키게 된다.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조치에 미국도 선의를 보여야 한다.

회담이 취소되고 북·미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다시 경색되는 상황으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된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에서 향후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이 바뀔 것을 전제로 회담에 임할 것을 시사한 만큼 아직 여지는 있다. 북·미가 함께 노력해 다시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재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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