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의 젠더 인식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꿉니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과학기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꿉니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과학기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7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해 논란을 빚었다. 윤 후보는 “젊은 사람들은 여성을 약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말을 바꿨다. 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남녀 차별이 없다고 말씀드린 건 아니다. 여성가족부 해체 때문에 그 말이 나온 건데, 개인적 불평등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성차별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도무지 헷갈린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의 말은 명확해야 한다.

윤 후보의 젠더 인식은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8월 저출생 문제를 언급하면서 “페미니즘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다. 지난해 말에는 성폭력처벌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성범죄 가해자가 무고죄를 빌미로 피해자를 압박하는 현실에서 극소수 사례를 이유로 이런 공약을 발표하자 여성청년을 기만하는 행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올해 들어선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올렸다. 이후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치솟았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대담한’ 발언을 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리라 짐작한다. 역시 2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한 발언일 것이다.

위법적 행태가 아닌 한, 대선 후보가 득표 전략을 세우고 수행하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두 가지 원칙은 필요하다. 우선 특정 세대·성별·계층의 지도자가 아니라 전체 시민의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분열적 언어가 아니라 통합적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다음으로, 엊그제 한 말을 오늘 다시 주워 삼키는 식으로 오락가락해선 안 된다. 이전에도 윤 후보는 페미니스트 정치인 신지예씨를 영입하며 직접 목도리까지 걸어주더니, 2주일 만에 영입이 잘못이었다고 사과한 바 있다. 주권자와의 신뢰를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 아닌가.

성평등은 남성 정치인들에게 낯선 이슈일 수 있다. 잘 모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모르면 공부해야 한다. 모르면서 아는 척해선 곤란하다. 더욱이 서울대 출신·법조인·이성애자라는 ‘주류 중의 주류’ 정치인이 ‘차별은 없다’고 단언하는 건 오만이다. 자신이 차별을 당해본 적 없다고 해서, 세상에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윤 후보는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시민의 세계로 옮겨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무지와 오만으로 인한 실언은 되풀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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