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이해충돌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7일 총리실 인사청문회준비단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1989년부터 10년간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자택을 미국계 대기업 2곳에 빌려주고 6억2000만원의 임대수익을 거뒀다. 첫 세입자는 세계 최대 통신기업인 미국의 AT&T였는데, 그 무렵 한국 정부에서 특혜를 받은 정황이 있다.
한 후보자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미주통상과장을 지냈다. 미국과의 통상업무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 사람이 본인 소유 주택을 미국 기업에 임대했다면 의문할 만하다. 청문회준비단 관계자는 “임차인 선정과 계약 과정은 모두 중개업소에 일임했고, 해당 회사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이 아예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고위직 통상 공무원의 주택을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 두 곳이 잇따라 임차한 것을 우연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이해가 상충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문제는 한 후보자의 업무 영역에서도 AT&T가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압력에 밀려 한국이 통신시장을 개방했던 1993년 AT&T는 한국통신 교환기 1·2차 입찰에서 전체 물량의 20.3%인 236억4000만원어치를 따냈다. 입찰에서 국내 업체들은 규정에 따라 수백쪽 서류를 제출한 반면 AT&T는 견적서 한 장만 내고도 낙찰받았다. 정부의 묵인이나 방조가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계약이어서 특혜 시비가 일었다. 입찰이 진행됐을 때 한 후보자는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이었다. 이후 1995년 한·미통신협상에서 한국은 AT&T에만 신형 전화교환기의 인증절차 간소화를 허용했다. 한 후보자가 청와대에서 나와 통상자원부 통상무역실을 총괄하던 시기였다.
한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준비단 사무실에 나흘째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앞서 출근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총리 후보자의 비전과 역량, 도덕성에 대해 많은 시민이 궁금해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갈수록 입을 닫고 있다. 앞서 한 후보자는 2017년 12월부터 총리 후보로 지명될 때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4년4개월간 고문을 맡아 18억원을 받았다. 최근 1년간 민간기업인 에쓰오일 사외이사를 겸임해 8200만원을 받은 사실도 있다. 과도한 전관예우를 받지는 않았는지, 이해충돌 상황에서 사익을 추구한 사례는 없는지 한 후보자는 소명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한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조만간 열릴 청문회에서 국회는 한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물론 자질과 역량까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