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확한 사고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숨진 장애인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게 된 연유 등 몇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던 장애인이 승강장을 나가는 과정에서 사고가 벌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당국은 지하철역 안의 시설을 포함해 장애인 이동의 위험 요인을 소상히 파악하고 개선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사고는 지난 7일 낮 12시50분쯤 서울 강서구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일어났다. 승강장에 내린 59세 남성 장애인 A씨가 다른 승객들이 모두 올라간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던 중 휠체어가 뒤집혔다.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휠체어 등의 진입을 막는 차단봉이 설치돼 있지 않아 사고를 방지하지 못했다. 차단봉 설치는 의무가 아니라 권고사항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사고 직후 9호선 전 역사에 차단봉을 즉각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때늦은 대처였다. 사고 당시 승강장의 엘리베이터는 정상 작동 중이었는데 A씨는 다른 사람들이 타는 걸 지켜보다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이용객이 많아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어렵고 불편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애인 이동을 둘러싼 열악한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용 리프트 추락 사망 사고 이후 장애인들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정부가 번번이 약속을 어기는 사이에 장애인들의 편익은 외면당하고 있다. 개선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과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장애인들의 출근길 시위를 비문명적 불법 시위라며 비난과 혐오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국토교통부가 요청한 교통약자 이동권 예산 중 30%인 440억원을 재정 부족을 이유로 삭감했고, 해당 예산의 90%가 저상버스 도입 보조 사업에 쓰일 뿐이다.
누구라도 불편과 차별 없이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들이 일상적인 이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장애인 교통 편의를 위한 인프라와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쪽에 책임이 있다. 정부와 여야가 합심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할 실질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려다 목숨을 잃는 일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