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 국정원장 수사 등 전방위 사정, 정권 위기 돌파용 안 된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출석해, 회의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출석해, 회의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검찰이 7일 박지원·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국정원이 대검찰청에 고발한 지 하루 만에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다. 박 전 원장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첩보 관련 보고서를 무단 삭제한 혐의, 서 전 원장은 ‘탈북 어민 북송 사건’ 당시 합동조사를 조기 종료시킨 혐의를 받는다. 기밀유지와 상명하복이 생명인 정보기관이 전직 수장 2명을 동시에 고발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사건 배당까지 초고속으로 이뤄진 데 비춰볼 때, 윤석열 정부의 본격적 사정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는 자국민 보호 책임과 인도주의 원칙에 소홀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두 사건 모두 실체 규명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서해 사건의 경우 유족이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정치중립을 표방하는 정보기관이, 집권여당이 쟁점화한 정치공방에 뛰어든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정원이 국내정치와의 절연을 선언하며 국내정보수집관(IO)을 폐지하고, 안보·해외업무에만 집중하기로 한 지 몇 해 지나지도 않은 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사검증 부실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비선 보좌’ 논란이 겹치며 지지율 급락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국정원장 2명이 수사 타깃이 된 것은, 전 정권에 대한 ‘친북몰이’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대통령실은 “(박·서 전 원장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국가범죄란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중대한 국가범죄’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그렇지 않아도 ‘윤 대통령-한동훈 법무장관 직할 체제’가 구축된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주겠다는 건가. 검찰은 오로지 사실과 증거에 따라 수사해 신속하게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정치권도 소모적 정쟁을 경계하며 차분히 수사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최근 권력기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 정부 사정에 돌입한 양상이다. 검찰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여성가족부 대선공약 개발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 경찰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 측 100여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감사원도 서해 사건과 관련해 해양경찰청 간부들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데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 감사에도 돌입했다. 윤석열 정부가 미증유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과거와의 전쟁’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른바 ‘신적폐청산’을 한다고 떨어진 지지율이 돌아오지 않는다. 권력은 절제할 때 힘을 발휘함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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