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폭 피해자, “소용없을 것 같아” 신고 안 한다니

고등학생들이 학교폭력 피해를 신고하지 않는 주요한 이유가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공개된 최근 6년간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이유를 꼽은 고교생의 응답 비율이 2018년부터 4년간 해마다 가장 높았다. 2022년 조사에서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라는 응답자가 29%로 최다였으나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응답도 27.1%로 비슷하게 많았다. 학교폭력 피해를 겪고도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가 낮아 신고를 꺼리는 것이다. 학교와 당국이 신속하고 엄정한 처분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한 탓이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폭력 목격 후 방관했다’는 응답 비율이 전체적으로는 줄어드는데 고등학생의 경우에만 증가 추세를 보이는 점이 눈에 띈다. 2018년 30%를 넘은 뒤 2022년 35.7%로 늘어났다. 타인의 피해를 보고도 모른 체하는 것 또한 학교와 당국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자신의 피해를 털어놓지 못하고 동료의 피해에도 침묵하는 학교 현실이 개탄스럽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별일 아니다’라는 이유가 30% 안팎으로 가장 많았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문제라는 경각심을 환기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피해 학생과 가족은 물론이고 공동체에 상처를 안기는 사회문제다. 가해자는 엄벌을 받고 피해자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사건은 이런 원칙이 구현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가해자는 학교폭력으로 전학 처분을 받고도 소송전으로 시간을 끌며 명문대에 진학했고, 피해자는 지속적인 폭력 피해로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한 부조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게 현실이라면 누가 엄정한 처분과 피해자 구제를 기대할 수 있겠나. 학교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피해 학생들의 심정을 당국은 헤아려야 한다.

교육부는 ‘정순신 사태’를 계기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해 이달 중순 이후 발표할 예정이다. 이전에도 학교폭력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대책을 쏟아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이번에야말로 허술했던 가해자 관리를 엄정히 하고 피해자 보호를 확대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학교폭력 처리가 제대로 됐는지 투명하게 검증하는 방안도 빈틈없이 세워야 한다. 피해 학생들이 신고를 꺼리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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