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오는 기시다 총리, ‘물컵의 나머지 반’ 채우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는 7~8일 한국을 실무 방문하기로 했다고 대통령실이 2일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은 3월 방일 계기에 기시다 총리의 서울 방문을 초청한 바 있으며, 이번 방한으로 정상 간 셔틀외교가 본격 가동된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도 총리 방한 계획을 발표했다. 양국 셔틀외교로 일본 총리가 방한하는 것은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방한한 2011년 이후 12년 만이다.

이웃나라 간에 정상이 오가는 일은 환영해야 할 일이고 장기간 중단됐던 셔틀외교 복원도 뜻깊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윤석열 정부의 성급하고 경솔한 한·일관계 복원 노력과 국민 자존심을 훼손한 언행, 과거사 문제를 ‘남의 일’ 보듯 해온 일본 정부의 태도가 이런 불편한 분위기를 빚어냈다.

윤석열 정부는 굴욕 논란을 빚은 ‘강제동원 제3자 변제’ 해법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세계무역기구 제소 취하, 화이트리스트 복원 등 일본에 선제적 양보를 거듭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방일한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사과를 생략하며 ‘먼저 물의 반 컵을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를 채울 것이라던 기대’를 무너뜨렸다. 그 후 일본은 초등교과서의 과거사 지우기, 외교청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기술로 뒤통수를 쳤다. 한국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 복원한 지 나흘 뒤에야 상응조치를 한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서둘러 온 한·일관계 복원이 국익과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여론의 이런 기류를 세심히 살피고, 성의 있는 방한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포함해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 역대 총리 발언을 되풀이하는 정도로는 한국 여론을 움직일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성의 있는 태도로 협의하기를 바란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으로 이뤄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한·미·일 3국 안보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북핵 악화와 불확실한 국제정세가 한·일 안보협력의 동력으로 작용했지만, 한반도 긴장을 더 키우고 일본의 재무장을 추동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도 걱정스럽다. 이번 방한을 통해 두 나라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외교 노력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협의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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