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도권·지방 양극화와 한전 전력망 투자, 악순환만 할 건가

전기를 타 지역으로 보내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송전 설비를 깔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유지 보수를 해야 한다. 송전 거리가 멀수록 전력 손실도 크다. 한국전력이 8일 발표한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의 골자도 2036년까지 송·변전 설비에 총 56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2021년에 내놓은 제9차 계획에서 29조3000억원이던 비용이 수도권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2년 새 두 배가량 늘었다.

한전의 계획은 초고압직류송전(HVDC) 기간망으로 전력이 풍부한 서해·호남지역과 전력 소비가 많은 수도권을 잇겠다는 것이다. 전력은 부족해도 문제지만 과잉 때도 송·배전망이 감당하지 못해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한다. 최근 호남지역은 태양광 설비 덕에 전기가 남아 때로 원전 출력을 강제로 낮추고 있다.

문제는 한전의 전력 공급망 확충이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도 저해한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이 떨어져 있는 나라도 없다. 전기차의 확산과 데이터센터 구축 등으로 수도권의 전력 수요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3기 신도시에도 1조원이 넘는 송·변전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도 엄청난 양의 고품질 전력이 확보돼야 한다. 갈수록 증가하는 수도권의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지금도 전국 곳곳에 발전소가 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발전소와 송전탑 건설을 반기는 주민은 없다. 충남 당진 주민들은 석탄발전소 저탄장에서 날아온 가루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한다. 경남 밀양과 전남 무안·영암, 강원도 홍천 등지의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로 한전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그렇다고 지방의 전기요금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송·변전 비용은 전기 총괄 원가에 반영돼 전국의 모든 소비자에게 똑같이 분담된다. 전기는 지방의 희생을 토대로 생산해 수도권에 공급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청년들이 주거 환경이 열악한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고, 이로 인해 수도권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집값이 폭등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적자난에 허덕이고 있는 한전이 송·변전 설비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더 늦기 전에, 국가의 에너지 수급 시스템과 국토 균형발전이 선순환하고 지속 가능한 대책을 세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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