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신림 흉기난동 피의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현장에 23일  숨진 피해자를 추모하는 국화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현장에 23일 숨진 피해자를 추모하는 국화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오후 2시7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상가 골목에서 조모씨(33)가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낮에 지하철역 인근의 번화가를 돌며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살인 등 혐의로 23일 구속된 조씨는 피해자들과 일면식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참담하고도 어이없는 비극이다. 수사당국은 엄중한 수사와 처벌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흉기 난동 사건을 극심한 피해의식으로 타인을 시기해 불특정 다수에게 극단적인 폭력을 표출한 반사회적 범죄로 보고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을 무작정 해치려는 사이코패스 성향도 보인다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이코패스 등에 대한 관리 감독 방안을 더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관리 감독이 이미 부실했다는 점이다. 조씨는 폭행 등 전과 3범에다 법원 소년부로 14차례 송치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충분히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는 이력인데도 당국의 관리나 예방 조치는 없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뚜렷한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는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 사건, 귀갓길 여성을 이유 없이 폭행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충격과 불안을 안긴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우발적 동기에 의한 범죄가 매년 증가하는 가운데 이른바 ‘묻지마 범죄’는 살해·상해 등 중범죄 비율이 80%를 넘고 재범 비율도 75%에 이른다고 한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사전 예방 시스템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통계나 대책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경찰청은 지난해 ‘묻지마 범죄’의 공식 용어를 ‘이상동기 범죄’로 이름 붙이고 분석·대응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무소식이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의 허술한 안전망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렸다. 범행의 원인을 가해자 개인을 ‘악마화’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사회에서 고립된 채 소통 기회가 단절돼 분노를 쌓아가는 이들의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관리할 시스템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사회의 부조리·불평등·양극화 양상과 무관치 않다. 사회에 대한 분노가 무차별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범죄 대응뿐 아니라 사회안전망의 강화도 필수임을 정책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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