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정에서 파탄 난 윤 대통령 ‘강제징용 3자 변제안’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에 즈음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에 즈음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제3자 변제금 공탁을 수리하지 않은 데 이어 이의신청도 기각했다. 광주지법 민사44단독 재판부는 지난 16일 “가해기업이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채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신청인(정부)이 제3자 변제를 통해 판결금을 변제한 후 가해기업에 구상권 행사를 하지 않는다면 가해기업에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결과가 발생해 채권자로서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채권의 만족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채권자의 반대 의사표시가 명백하다면 3자 변제를 제한하는 것이 손배 제도의 취지 및 위자료의 제재적·만족적 기능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앞서 전주지법도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 피해자 의사에 반해 정부가 일본 기업들을 대신해 위자료를 지급하는 게 위법하다는 사법부 판단이 나온 것이다.

정부는 공탁 불수리가 법원 직원의 형식적 판단이었다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이번 결정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동원한 제3자 변제가 사실상 파탄 났다는 걸 뜻한다. 1심 판결이긴 하나 복수의 법원들이 내놓은 일치된 판단은 단단한 법리 위에 서 있는 듯하다. 징용 문제를 그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로써 윤 대통령이 무리하게 추진한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 자체가 허물어졌다. 충분한 논의 없이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던 징용 문제가 사실은 법리적 문제가 있는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호응 조치를 기대하기 이전에 한국이 이미 채웠다는 반 컵의 물 자체에도 결정적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17일 미국으로 떠났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3자 회담에서는 원칙·공동성명·부속합의 문서를 채택할 거라고 한다. 30년 가까이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에 공들인 미국으로선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시도가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냉철하게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이 자랑하는 한·일관계 개선은 튼튼한 토대 위에 서 있지 않다. 그 법리적 토대가 허물어진 데다, 과거사 문제를 이렇게 묻어버리고 가는 독단적 정책에 대한 한국 내 지지는 낮다. 윤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이종찬 광복회장과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 등도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허약한 한·일관계 토대 위에서 구축하려는 한·미·일 안보 협력체라는 구조물이 지속 가능할지 근본적 물음에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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