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장 선임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4일 사장 후보 임명 제청을 위한 임시회의를 연 KBS 이사회는 6일 회의를 속개하자마자 폐회했다. 사장 후보를 정하지 못한 것이다. 사장 선임 절차가 중단된 것은 사장 후보 결선투표를 앞두고 KBS 이사회의 여권 추천 이사와 사장 후보 1명이 잇따라 사퇴하며 일어났다. 그러나 이 혼란의 근본 원인은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채 사장 교체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친여 인사를 ‘낙하산’으로 앉히려 한 데 있다. 여권의 무리한 방송장악 시도가 빚은 파행이다.
여야 6 대 5 구도인 KBS 이사회는 지난 4일 1차 투표에서 사장 후보 3인 중 과반(6명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서기석 이사장 직권으로 결선 투표를 6일로 연기했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일이다. 여권 이사들 간 이견이 관측됐고, 내정설이 나도는 박민 문화일보 논설위원의 낙점 불발을 우려한 이사회 결정으로 보는 눈이 많다. 그 후 여권 추천 김종민 이사가 지난 5일 사의를 밝혀 남은 여권 이사 5명만으로 사장 후보를 확정할 수 없게 됐다. 결선투표 후보에 오른 최재훈 KBS 기자도 “이사회의 정파적 표결에 자괴감을 느꼈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극심한 내홍이 아닐 수 없다.
미궁에 빠진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가 경영진 교체를 주먹구구식으로 속전속결 강행한 것이 이 사태를 불렀다. 정부는 지난 7월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쫓아낸 후 KBS 이사진을 여권 우위로 신속히 재편했고, KBS 이사회는 불과 2주 만에 김의철 사장을 해임한 뒤 법원의 집행정지 소송 결과도 나오기 전 번갯불에 콩 볶듯이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했다. ‘답정너’식 속도전이 사장 선임 절차를 졸속으로 만들고 혼란을 부른 것이다.
KBS 이사회는 향후 절차와 일정을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단독 후보가 된 박 후보를 놓고 그대로 선출할지, 아니면 다시 공모 절차를 밟을지 결정하지 않았다. 절차상 문제와 낙하산 임명에 대한 반발을 불러 파행을 빚은 박 후보 선출을 강행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낙하산 인사를 임명하기 위한 요식 행위로 드러난 선임 절차는 국민 눈높이에선 이미 무효다. KBS 이사회는 여권 이사를 복귀시키거나 새로 채워 낙하산 임명을 강행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실 인사를 배제하고 백지 상태에서 재공모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