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외교 대통령’이라는 신화가 지난달 말 2030 엑스포 부산 유치의 처참한 실패로 깨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주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32%로 나타난 가운데, 그나마 긍정 평가 이유 1위인 외교에 대한 긍정 평가는 42%에서 31%로 급락했다. 이후 대통령 순방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방문 협의 도중 네덜란드 측이 한국 대사를 초치해 과잉 의전 요구에 항의한 일, 지난달 프랑스 방문 당시 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가졌다는 술판 논란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부인의 순방 동행이 꼭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내치의 실패를 외교에서 만회하려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과거 대통령들도 임기 말로 갈수록 그런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초청국의 대접에 매달리거나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게 되면, 국익을 훼손하거나 외교 자원을 엉뚱한 곳에 쓰게 될 우려가 있다.
많은 순방 횟수, 과잉 의전 요구, 잦은 부인 동행 등 형식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윤석열 외교의 방향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략적 편중에서 비롯된 균형의 실패이다. 올해 한국 외교에서 가장 큰 사건은 지난 4월 일본에 과거사 면죄부를 준 뒤 일사천리로 지난 8월 한·미·일 3국 동맹 수준의 정상 합의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북·러 30년 만의 밀착’ 같은 반작용을 초래했던 점을 보면 그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 뒤 중국을 북·중·러 협력 구도에서 떼어놓겠다는 전략적 포석이 대통령실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왔지만, 과연 성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불발했고, 한·중·일 정상회담 연내 개최도 무산됐다. 그런 가운데 정부는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의 최근 방미를 계기로 한·미·일 확장억제 협력을 또다시 언급했다. 중국은 내년 북한과 수교 75주년을 앞두고 4년여 만에 고위급 회동을 재개했다. 북한·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문제에 중요한 행위자들과 외교를 할 여지를 없애버린 미·일 일변도 외교가 국익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속도감 있게 가자는 방향으로 떠밀려 왔지만, 나중에 ‘이 길이 아닌가’라고 하는 상황을 맞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괜히 하는 걱정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엑스포 유치전에서 한국에 표를 준 29개국이 어느 나라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처지이고 보면 지금 이 정부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시 대비책이 있는지 묻는 것조차 사치스럽다. 외교에서도, 대통령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대통령이 듣기 좋은 얘기만 하는 참모진의 책임도 크다.